KB국민은행 직원들만 누리는 '내 퇴직금 내가 굴리기'
입력 2026.06.10 07:00

취재노트

4대 은행 중 KB만 DB·DC형 병행

나머지 시중은행들은 DB형 중심

ETF 장세 타고 은행원들 사이서도 관심

호봉제 은행 특성상 DB형 유리하단 반론도

  • (그래픽=윤수민 기자)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서 퇴직연금은 더 이상 '언젠가 회사를 나갈 때 받는 돈' 정도가 아니다. 증권사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에서 ETF를 골라 담고, 미국 빅테크와 반도체, 배당주, 채권혼합형 상품까지 직접 조합하는 투자 계좌에 가까워졌다. 연금계좌에도 말 그대로 'FOMO'가 붙은 셈이다.

    은행원들도 다르지 않다. 누구보다 금융상품을 잘 알고, 시장 흐름을 가까이서 보는 사람들이 은행원이다. 고객에게는 '장기투자', '분산투자', 'TDF', 'ETF'를 설명한다. 그런데 정작 본인 퇴직금은 직접 굴리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시중은행 상당수가 직원 퇴직연금을 확정급여형(DB)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 가운데 KB국민은행만 DB형과 확정기여형(DC)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지난 2017년 노사합의를 통해 DC형을 도입했다. 상시 전환 방식은 아니고, 매년 한 차례 신청 기간을 둬 희망 직원에 한해 DB형에서 DC형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2017년부터 노사합의를 통해 시행하고 있으며, 1년에 한 번 신청 기간을 둬 원하는 직원들이 전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다른 주요 시중은행들은 일반직 직원 퇴직연금을 DB형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DB형은 회사가 퇴직급여 재원을 운용하고, 직원은 퇴직 시점의 평균임금과 근속연수 등을 기준으로 산정된 퇴직급여를 받는 구조다. 운용 성과는 회사에 귀속되고, 운용이 부진해도 회사가 퇴직급여 지급 책임을 진다. 직원 입장에서는 안정적이지만, 본인 판단으로 ETF나 펀드를 사고팔며 퇴직금을 불릴 수는 없다.

    요즘 같은 장에서는 이 차이가 제법 크게 느껴진다. 퇴직연금 시장 자체도 이미 예금 중심에서 ETF와 TDF 중심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이 내놓은 '2025년 우리나라 퇴직연금 투자 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연금 ETF 투자금액은 48조7000억원으로 집계됐다. ETF는 3년 연속 100%대 증가율을 기록하며 실적배당형 상품의 핵심 투자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전체 퇴직연금 수익률도 6.5%로 제도 도입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TDF 수익률은 지난해 말 기준 13.7%를 기록했고, 디폴트옵션 중립투자형 수익률도 10.8%에 달했다. 반면 정기예금이나 원리금보장형 상품 중심의 안정형 디폴트옵션 수익률은 2.6% 수준에 그쳤다. 시장이 나쁠 때는 안정성이 장점이지만, 증시가 강한 해에는 '내가 굴렸으면 더 벌었을 텐데'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은행 퇴직연금 고객들도 이미 움직이고 있다. 4대 은행의 퇴직연금 ETF 잔액은 2024년 말 3조2994억원에서 2025년 말 10조7363억원으로 1년 만에 3배 이상 늘었다. 올해 초에도 증가세는 이어졌다. 퇴직연금 고객들이 더 이상 예금에만 머무르지 않고 ETF를 노후자산 관리 수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다.

    이러다 보니 은행 내부에서도 올 들어 KB국민은행 사례가 종종 회자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시장에 관심이 많은 직원들은 DC형 선택권을 부러워하는 분위기가 있다"라며 "ETF나 TDF를 잘 아는 젊은 직원일수록 직접 운용에 대한 관심이 더 큰 편"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물론 DB형이 무조건 불리한 것은 아니다. 은행권은 여전히 호봉제 성격이 강하고 근속연수가 긴 편이다. 임금이 꾸준히 오르고 장기근속이 가능하다는 전제에서는 퇴직 직전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산정되는 DB형이 직원에게 더 유리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은 호봉제 기반에 근속연수가 긴 조직이라, 매년 임금의 일정 비율을 적립받아 직접 운용하는 DC형보다 DB형이 직원에게 유리한 제도로 여겨져 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DC형은 선택권의 대가로 책임도 함께 진다. 운용을 잘하면 퇴직급여가 커지지만, 시장이 꺾이면 손실도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상승장에서는 모두가 '투자 고수'처럼 보이지만, 연금은 1년짜리 매매 계좌가 아니다. 퇴직 시점까지 긴 기간을 버텨야 하는 돈이라는 점에서 은행들이 안정성을 우선해온 배경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분위기는 사뭇 달라지고 있다. DB형과 DC형 중 무엇이 절대적으로 낫느냐보다, 직원에게 선택권을 줄 수 있느냐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는 평가다.

    퇴직연금 시장에서 은행들은 고객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고객에게는 ETF 상품군을 늘리고, 디폴트옵션을 안내하고, 연금 상담 조직을 강화하는 추세다. 그런데 정작 내부 직원에게는 '퇴직금은 회사가 알아서 굴려줄 테니 기다리라'는 구조가 유지된다면 묘한 간극이 생길 수밖에 없다. 

    금융상품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자기 퇴직금에는 가장 보수적인 제도만 적용받는 셈이다.

    DC형을 운영하는 KB국민은행이 다른 은행 직원들의 부러움을 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퇴직연금이 더 이상 회사가 정해주는 급여가 아니라 개인이 관리하는 자산으로 바뀌는 흐름 속에서, '내 돈을 내가 굴릴 권리'에 대한 감각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권 노사 논의에서도 언젠가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올라올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는 DC형 전환을 일괄적으로 요구하는 문제라기보다, 안정성을 원하는 직원과 운용 자율성을 원하는 직원 사이에서 선택지를 어떻게 넓힐 것인지의 문제에 가깝다. 올해 뜨거운 증시는 그 논의를 은행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계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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