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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실트론 경영권 매각이 표류하고 있다. 지난해 말 이미 두산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협상을 진행해온 SK그룹은 이르면 올해 초 매각작업을 완료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반도체의 업황이 전례없는 초호황기에 접어들면서 양측의 계산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고 현시점에선 매각이 실제로 진행될지 여부도 불투명하단 관측이 나온다.
SK실트론의 개인 대주주이자 그룹의 최종 의사결정권을 가진 최태원 회장은 "(SK실트론 매각은) 실무진이 결정할 사안"이라며 한 발 물러섰다. 실트론의 지분 매각은 최 회장의 개인 자산의 향방과도 맞닿아있기 때문에 실무진(?)을 넘어 경영진들의 고심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SK그룹이 우여곡절 끝에 실트론 경영권 매각을 결정한 건 지난해 중순이었다. 수조원대의 M&A에 걸맞지 않게 별도의 매각주관사 선정 없이 매각을 진행했을 정도로, 매각 작업은 수면 아래서 조용히 진행됐다. 그룹 차원에선 최 회장과 얽힌 과거의 지분 변동의 이력들이 낱낱히 공개되는게 부담스러운 상황이기도 했다. 굴지의 사모펀드(PEF) 운용사와 대기업들이 인수 후보자의 물망에 올랐고 결국 승기를 거머쥔 건 두산그룹이었다.
한 때 그룹의 존폐를 걱정해야했던 두산그룹은 원전 사업의 부활과 함께 재기에 성공했다. 로봇과 반도체는 사업 확장과 그룹 재건의 마지막 퍼즐이었다. 그만큼 인수 의지가 상당히 강했다. 그룹이 일정수준 이상 체질개선에 성공한만큼 자금조달에 의구심을 갖는 투자자들도 많지 않았다. 실트론 인수를 통한 수직계열화의 완성, 계열사간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우리나라 반도체 주류에 편승하겠단 비전을 갖고 있는 두산그룹은 여전히 인수 의지가 굉장히 큰 것으로 파악된다.
순항할 것만 같았던 실트론 매각 작업에 기류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 건 올해 중순부터이다.
( 관련기사 2026년 5월19일: SK는 실트론을 반드시 두산에 안겨줘야만 할까?)
반도체 업황은 깊은 침체기를 탈출했고, SK하이닉스가 살아나자 그룹도 여유를 되찾기 시작했다. 한동안 공급과잉 이슈에 따른 웨이퍼 가격의 하락, 미중 무역 갈등, 설비투자에 대한 부담 등 '아깝지만 어쩔 수 없이' SK실트론을 팔아야했던 이유들이 현재는 구문이 돼버렸다.
세계 최고수준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생산하는 엔비디아와 SK그룹의 관계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최근 최태원 회장과 회동을 가진 젠슨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SK하이닉스는 최대 메모리 파트너로 투자 규모는 훨씬 커질 것"이라고 밝혔고 구체적인 협업 방안도 제시했다.
이에 앞서 젠슨황은 이달초 대만에서 열린 한 행사장에서 SK하이닉스 부스를 찾아 실물 웨이퍼에 "Please Make More(더 만들어 달라)"란 문구를 남기기도 했다. AI 수요 급증에 메모리 반도체의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실상의 SK하이닉스를 향한 러브콜이란 해석이 충분히 가능했다.
최 회장은 이에 "향후 5년안에 반도체 생산능력을 현재의 2배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 화답했다. 양사의 협력 관계가 더욱 단단해지면서 SK그룹, 특히 SK하이닉스는 더 많은 투자자들을 우군으로 확보하고 있다. 6월7일 미국 브로드컴의 실적 부진과 주가하락 쇼크로 국내 증시가 큰 타격을 입었을 당시에도 SK하이닉스는 초기 낙폭을 모두 만회하는 모습을 나타내며 저력을 과시했다.
물론 최 회장의 발언이 얼마나 구체적인 청사진 안에서 제시된 건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현재 상황만 두고본다면 반도체 생산에 핵심 요소인 웨이퍼를 생산하는 SK실트론에 대한 SK하이닉스의 의존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사실 반도체 업황이 전례없는 호황의 사이클로 진입했지만 실트론에는 아직 그 온기는 온전히 전해지진 않았다. 전방산업으로부터 6개월에서 최대 1년을 후행하는 웨이퍼 산업의 특성상 낙수효과는 올 하반기부터 본격화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SK그룹 경영진의 셈법이 굉장히 복잡해졌다. 사내이사, 사외이사 등 직함을 떠나 이사회에 참석한 그 누구도 선뜻 지난해 계산서를 승인하기란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는 평가다.
불과 6개월 전과 비교해 SK하이닉스는 물론 핵심 관계사들의 몸값은 크게 뛰었고 전망치 역시 하루가 다르게 쓰여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 단위의 최 회장의 개인 재산이 묶여있는 SK실트론 경영권 매각이, 실무진의 도장만으로 속전속결로 진행될 수 있을것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단 평가다.
현재는 실트론의 매각 배경 중 하나로 지목됐던 최태원 회장의 자금소요 역시 크게 줄었다. 경영권 거래가 급물살을 타던 지난해 말, 대법원은 최 회장의 재산분할 부문에 파기환송을 결정했다. 고등법원의 판결대로라면 최 회장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약 1조4000억원을 지급해야했으나 현재는 부담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또 SK그룹 주가가 급격하게 상승하며 최 회장이 활용할 수 있는 자산이 늘었단 점도 개인적인 자금 부담이 줄어든 요인중 하나로 분석된다.
SK실트론 매각은 SK그룹 리밸런싱(사업조정)의 마지막 작업으로 여겨져왔다. 돈 안되는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고 그룹의 체질을 개선하겠단 취지에서 시작된 '리밸런싱'은 현재 SK그룹의 상황에선 그 의미를 찾기가 쉽지 않다.
물론 M&A의 귀재들이 모인 두산그룹이 전략적 선택지를 추가적으로 제시할진 미지수이지만, SK그룹이 확실히 여유를 갖고 이번 거래의 주도권을 쥐게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입력 2026.06.09 07:00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6년 06월 08일 14:48 게재
표류하는 SK실트론 경영권 매각
더 가까워진 SK그룹과 엔비디아
웨이퍼에 "Please make more" 남긴 젠슨황
2배 생산 공언한 최태원 회장 "실트론 매각, 실무진 몫"
동력잃은 SK그룹의 리밸런싱, 실트론 매각 명분도 흐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