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는 실트론을 반드시 두산에 안겨줘야만 할까?
입력 2026.05.20 07:00

취재노트

위기에서 시작된 리밸런싱의 마침표. 실트론.

하이닉스發 낙수효과 초입, 계산식 달라질 수도

사법리스크 털어낸 최태원 회장, 재산분할도 원점

급할 것 없어진 SK그룹, 그룹내 미묘한 기류변화

  • SK실트론 경영권 매각은 그룹 차원의 리밸런싱(사업조정) 작업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2024년 확대경영회의에서 처음 제시된 리밸런싱이란 화두는 돈 안되는 비주력 사업을 하나씩 정리하고, 그룹의 체질을 개선해 주력 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중 하나로 기록돼 있다. 물론 그룹의 확장기조와 맞물린 파이낸셜스토리의 조용한 마무리, 일부 경영 실책을 덮기 위한 명분이란 평가도 공존한다.

    SK실트론 경영권 매각 역시 유사한 맥락이었다. 실트론이 장기적으로 성장성이 클 것이란 전망에 이견을 갖는 투자자들은 많지 않으나, 지금과는 너무도 다른 '당시의 SK그룹'에 SK실트론에 대한 부담이 만만치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매각이 거론된 다른 선택지들도 많았지만 실트론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 중 하나이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2년전인 2023~2024년도만해도 반도체 업황은 깊은 침체에서 허덕였다. 전방 산업의 부진은 SK실트론의 실적에 고스란히 연동됐다. 공급과잉 이슈에 웨이퍼 가격은 하락했고, 미국과 중국의 관세싸움, 막대한 설비투자, 언제 매섭게 치고 올라올지 모르는 중국 기업들의 약진, 중복상장 이슈로 사실상 물건너간 IPO 등은 그룹이 실트론을 계속 끌고가기엔 부담스러운 요소들이 많았다.

    그렇다고 공식적으로 실트론을 M&A 시장에 매물로 내놓기도 애매했다. 최태원 회장의 개인 지분이 얽혀있는터라 거래가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걸 그룹차원에서도 원치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금액이 얼마다", "조건이 이렇다", "어떤 후보가 등장했다" 등 절차가 하나하나 공개되는 과정에서 최 회장의 지분 취득과정과 타당성 및 정당성이 투자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는것 역시 부담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실트론은 규모에 걸맞지 않게 매각주관사 없이 수면 아래서 매각이 진행됐다. 몇몇 로펌 등이 조력자로 참여했지만, M&A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SK와 두산그룹의 개인기에 의존해 거래가 진행돼왔다.

    두산그룹의 이해득실은 뚜렷하다. '다수'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그룹의 인수 의지는 상당히 강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빠르고 확실하게 거래를 종결하고 싶어한단 의미다.

    두산은 실트론 인수를 통해 수직계열화를 완성하고, 계열사와 시너지를 극대화해 반도체 시장의 주류로 자리잡겠단 비전이 명확하다. 실트론의 발목을 잡고 있던 미국 자회사 실적 부진, 앞으로 막대한 자금 소요가 발생할 것이란 전망에도 불구하고 자금력을 앞세운 사모펀드(PEF)와 맞붙어 막판 거래를 뒤집은 저력 역시 뚜렷한 미래전략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된다.

  • (그래픽=윤수민 기자)

    SK그룹도 두산과 비슷한 꿈을 꾸고 있을까? 

    불과 반년 전과 비교해 지금 SK그룹의 상황이 180도 반전했단 점은, 실트론을 반드시 또는 지금 시점에 팔아야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나오는 배경이 되고 있다.

    현 시점, 그룹 내부적으로도 의사결정권자 사이에선 매각에 대한 회의적인 분위기가 퍼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반도체 업황은 유례 없는 초호황의 사이클로 진입했다. 실트론의 주요 납품처인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과거의 전망치가 무의미해졌고, 실적과 주가 기준점이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다. 웨이퍼 산업은 전방산업으로부터 약 6개월에서 1년을 후행하기 때문에 SK하이닉스 발(發) 낙수효과는 시작조차하지 않았다. 

    보수적으로 2027년까지 반도체 업황의 호조가 지속된다고 가정해도 앞으로 수년 간 이익 개선세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하듯 실트론의 경쟁사인 일본의 섬코(SUMCO)의 기업가치는 연초 대비 2배 이상 상승했고 주가는 5년 중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실리콘 웨이퍼 전세계 1위 기업 신에츠화학(Shin-Etsu) 역시 연일 신고가를 경신중이다.

    실트론을 둘러싼 최태원 회장의 사법리스크는 사라졌다. 거래가 검토되던 시점을 전후로 검찰은 "사익편취 의혹과 관련해 공정거래법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법법상 배임 등에 대해 최태원 회장과 SK㈜에 혐의가 없다"고 결론을 지었다.

    사법리스크가 사라진 이후 최 회장의 실트론 지분(약 29.4%) 처리 방안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렸다. 현재로선 시차를 두고 두산그룹이 최 회장의 지분을 모두 사들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기업가치 5조원을 가정하면, 최 회장의 단순 지분가치는 1조원을 넘어선다.

    한 때 최 회장은 실트론 지분을 팔 수만 있다면 팔아야하는 이유가 있었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이혼 소송 과정에서 고등법원이 최 회장에게 재산분할로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하며 자금소요가 결코 적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재산분할 부문에 대해서 파기환송 결론을 내리면서 현재로선 자금 부담이 크게 줄어든 상황으로 평가받고 있다.

    SK하이닉스의 호조로 그룹과 오너는 자금걱정을 덜어냈다. SK㈜의 대주주(17.9%)인 최 회장의 지분가치도 크게 증가했다. 이를 현금화할 개연성은 적지만, 가치가 높아지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활용할 방안이 많아졌다. 불과 반 년 사이 그룹 핵심계열사들의 곳간이 넉넉해졌다. 실트론 매각을 끝으로 리밸런싱의 대장정을 반드시 마무리 지어야한다는 당위성이 떨어졌단 의미이기도 하다.

    아직 우선협상대상자라는 위태로운 지위만을 유지하고 있는 두산은 앞으로 100년 먹거리를 위해 승부수를 던진 상태다. M&A를 통해 그룹의 흥망성쇠를 겪었왔던만큼 쉽게 물러설 그룹은 결코 아니다. 반면 전례없는 호황에 하루가 다르게 곳간이 쌓이고 있는 SK그룹은 여유를 되찾고 있다.

    복잡한 이해관계와 수많은 변수 속에 실트론을 둘러싼 협상의 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6개월 전 양쪽이 내민 계산서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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