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 딥엑스' 찾는 금융권…AI 직접투자 후보군은 벌써 부족
입력 2026.06.09 07:00

리벨리온·업스테이지·퓨리오사AI 이어 딥엑스 투자 논의

생산적 금융 실적 쌓아야 하는 금융권, AI 기업 IR 검토 확대

대표 후보군 외엔 규모·수익성·기술 검증 부담 커

"직접투자보다 공동투자·간접투자가 현실적" 신중론도

  • 국민성장펀드의 핵심 투자 테마가 인공지능(AI)으로 좁혀지면서 금융권의 AI 기업 찾기도 빨라지고 있다. 리벨리온, 업스테이지, 퓨리오사AI에 이어 딥엑스까지 대규모 투자 후보군에 오르며 주요 금융그룹의 관심이 집중되는 분위기다.

    다만 시장에서는 투자 가능한 AI 기업 풀(pool)이 예상보다 좁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책 명분과 기술력, 대규모 자금 집행 여력, 회수 가능성을 함께 갖춘 기업은 많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이른바 '넥스트 딥엑스'를 찾기 위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지만, 직접투자에 대한 부담도 동시에 커지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국민성장펀드의 AI 직접투자는 이미 대표 기업 위주로 속도를 내고 있다. 

    리벨리온은 AI 반도체 분야에서 국민성장펀드 직접투자 1호격 사례로 꼽힌다. 첨단전략산업기금 2500억원을 포함해 산업은행과 민간자금이 함께 들어가는 구조로 투자 승인이 이뤄졌다. 업스테이지는 소버린 AI와 파운데이션 모델 분야의 대표 사례로, 첨단기금 1000억원과 산은·민간 매칭을 포함한 총 5600억원 규모의 투자 대상이 됐다.

    최근에는 퓨리오사AI에 대한 대규모 지원도 확정됐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8일 국민성장펀드 기금운용심의회를 열고 퓨리오사AI에 첨단전략산업기금 3700억원 직접투자를 포함해 국민성장펀드 총 8000억원 안팎의 지원을 승인했다. 국산 신경망처리장치(NPU) 양산과 차세대 AI 반도체 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자금이다.

    다음 후보로는 딥엑스가 거론된다. 온디바이스 AI 반도체 기업인 딥엑스는 6000억원 안팎의 프리IPO 라운드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KB금융, 신한금융, NH금융 등 주요 금융지주가 각각 1000억원씩 투자해 공동 앵커 역할을 맡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민간 선투자가 마무리되면 국민성장펀드의 매칭 투자 논의도 속도를 낼 가능성이 거론된다.

  • (그래픽=윤수민 기자)

    금융권 안팎에서는 리벨리온·업스테이지·퓨리오사AI·딥엑스 등은 애초부터 국민성장펀드의 AI 투자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대표 후보군으로 분류돼 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AI 반도체와 AI 모델 등 정책 테마에 부합하고, 수천억원 단위 자금 집행도 가능한 몇 안 되는 기업이라는 설명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퓨리오사AI, 업스테이지, 리벨리온, 딥엑스는 순차적으로 투자가 검토될 수밖에 없는 후보군이었다"라며 "정책 명분이 선명하고 규모도 있어 가져오기만 하면 검토가 빠르게 이뤄질 수 있는 기업들로 분류됐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금융권은 국민성장펀드와 생산적 금융 기조에 맞춰 AI 투자 실적을 쌓아야 하지만, 대표 후보군을 제외하면 직접투자 대상으로 삼을 만한 기업이 많지 않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일정 규모 이상의 자금을 투입하려면 기업가치와 성장성, 기술 검증, 회수 가능성이 동시에 맞아야 하는데, 이를 충족하는 기업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실적은 채워야 하는데 리벨리온, 업스테이지, 퓨리오사AI, 딥엑스 외에는 너무 작거나 초기 단계인 곳이 많다"며 "개별 금융사가 단독으로 들어가기보다는 여러 기관이 함께 들어가야 부담을 덜 수 있다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상대적으로 초기 단계 성격이 강한 AI 서비스 기업들도 금융권 IR 테이블에 오르고 있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뤼튼테크놀로지스는 최근 한 금융그룹 계열 벤처캐피탈 주관으로 그룹 내 투자 관련 계열사들을 대상으로 IR을 진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장 투자 검토가 본격화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동안 대형 AI 반도체·모델 기업에 집중됐던 금융권의 관심이 AI 서비스 기업으로도 넓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뤼튼은 국내 생성형 AI 서비스 기업 가운데 빠르게 외형을 키운 곳으로 꼽힌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큰 폭으로 늘었지만 영업손실도 확대됐다. 금융권에서는 매출 성장세 자체는 주목하면서도, 손익분기점(BEP) 전환 시점과 수익모델 검증을 핵심 변수로 보는 분위기다. 

    AI 서비스 기업은 이용자 증가와 매출 확대 속도가 빠르더라도, 모델 사용료와 마케팅 비용, 글로벌 확장 비용이 함께 늘어날 수 있어 재무적투자자(FI) 입장에서는 투자 판단이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직접투자에 대한 신중론도 적지 않다. AI 기업의 기술 우위와 생존 가능성을 금융사가 직접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AI 반도체나 파운데이션 모델 기업은 기술 변화 속도가 빠르고, 글로벌 빅테크와의 경쟁 구도도 변수로 작용한다. 금융권이 정책 기조에 맞춰 자금을 공급하더라도 개별 기업의 기술 경쟁력까지 독자적으로 검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엔지니어들도 어느 AI 기업이 최종적으로 살아남을지 예측하기 어려운 영역인데, 금융사가 직접 기술을 보고 대규모 자금을 태우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라며 "간접투자는 가능해도 직접투자에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금융권의 AI 투자 방식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뉘는 분위기다. 

    우선 리벨리온, 업스테이지, 퓨리오사AI, 딥엑스처럼 정책 명분과 대규모 자금 집행 여력이 확인된 기업에는 직접투자 형태로 참여한다. 그 외 상대적으로 초기 단계 기업은 벤처캐피탈(VC)이나 정책펀드 출자를 통한 간접투자 방식으로 접근한다. 기술 검증 부담이 큰 경우에는 여러 금융기관이 공동으로 들어가 리스크를 나누는 방식도 검토된다.

    순수 AI 기업 외의 인프라성 투자로 시야가 넓어지는 흐름도 나타난다. 데이터센터, 그래픽처리장치(GPU), 전력망, 전선, 반도체 테스트·패키징 등 AI 생태계 주변 밸류체인이 대표적이다. 실제 매출과 현금흐름이 확인되는 기업일수록 금융권 입장에서는 투자 명분과 리스크 관리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평가다.

    국민성장펀드의 AI 투자는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소버린 AI와 K-엔비디아 육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고, 금융그룹들도 생산적 금융 실적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만 대형 후보군에 자금이 먼저 몰린 뒤에는 후속 후보군의 기술력과 수익성 검증이 더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다.

    투자업계에서는 올해 하반기부터 AI 투자와 관련한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성장펀드가 AI 직접투자의 물꼬를 텄지만, 금융권 입장에서는 '어떤 AI 기업에 투자했느냐'만큼이나 '어떤 방식으로 리스크를 나눴느냐'가 중요해질 수 있다는 평가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AI가 국민성장펀드의 대표 테마가 된 것은 맞지만, 모든 AI 기업이 대규모 직접투자 대상이 될 수는 없다"며 "대표 기업 이후에는 결국 밸류에이션, 수익모델, 기술 검증, 회수 가능성을 놓고 금융권의 눈높이가 다시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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