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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대기업들의 사업조정 기류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산을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이 지상과제였지만, 최근 실적이 개선되고 자금 확보에 숨통이 트이면서 매물을 다시 거둬들이거나 속도를 조절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SK실트론 매각이 대표적이다. 작년말만 해도 SK㈜가 유동성 확보를 위해 매각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는데, 반년 가까이 장고가 이어지고 있다. SK㈜는 SK스퀘어를 통해 SK하이닉스발 수혜를 누리고 있다. SKC 증자도 지원할 만큼 자금 사정에 여유가 생겼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달 초 해외 행사에서 SK하이닉스의 생산 능력을 5년 내 2배로 늘리겠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SK실트론 매각을 실무진이 결정할 사안이라고 했다. 웨이퍼 공급의 핵심인 SK실트론을 팔겠다는 의지는 전보다 옅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SK하이닉스는 주식예탁증서(ADR) 방식으로 미국 상장을 추진 중이다. 3월 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등록신청서를 제출했고, 후속 절차를 밟고 있다. 제출 당시 SK하이닉스 주가는 100만원 안팎이었는데, 현재는 200만원을 넘어섰다. ADR은 발행하겠지만 '기업가치 재평가' 필요성은 전보다 낮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SK넥실리스의 투자 유치 작업도 작년말 투자자를 낙점한 후 수개월째 공회전 상태다. 모회사 SKC는 조단위 증자를 단행하며 숨통이 트였고, 유리기판 사업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전처럼 유동성 확보가 시급하지는 않은 상황이다. 상반기 상황을 살핀 후에야 투자 유치 여부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롯데그룹은 지난달 사모펀드와의 롯데렌탈 매각 협상을 중단했다. 매각 작업이 1년 넘게 끌리는 사이 롯데케미칼과 롯데건설이 급박한 시기를 넘었고, 그룹은 다양한 수단을 활용해 유동성도 확보했다. 롯데그룹은 다시 롯데렌탈 원매자와 접촉 중인데, 이전처럼 채권단과 금융당국의 매각 압박이 크지는 않다.
롯데케미칼은 1분기에 영업이익 734억원을 기록했다. 2023년 이후 10분기만의 흑자전환이다. 미국-이란 전쟁 이후 유가와 석유화학 제품 가격이 오르면서 스프레드가 개선됐는데, 2분기도 흑자 가능성이 점쳐진다. 최근 실적 개선에 힘입어 롯데그룹 수뇌부에선 다시 신사업을 물색해달라는 주문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DL케미칼은 작년 카리플렉스 매각 주관사를 선정했다. 올해 초 주관사를 변경하며 매각을 서두를 것으로 점쳐졌지만 여전히 개점휴업 상태다. 마찬가지로 중동 전쟁 이후 수익성 개선 효과를 보고 있어 알짜 사업을 매각할 유인이 약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그룹은 올해 카카오헬스케어, 카카오게임즈에 이어 두나무 투자 지분 등을 정리하며 효율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재무적 투자자(FI) 회수 문제가 얽혀 있는 카카오모빌리티는 계속 안고 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카카오가 경영권을 고수하다 보니 FI 교체 작업은 번번이 무산됐다.
최근엔 FI 주도로 카카오모빌리티 ADR 발행이 추진 중인데 성사를 낙관하긴 어렵다. FI가 경영권에 깊숙이 관여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카카오 측으로부터 전향적인 협조를 얻어내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실적 여유가 생기거나 시장에서 유동성을 조달하는 것이 수월해진 대기업들이 관련된 거래들은 주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자산 매각 계획을 조절하는 것을 넘어 사업 확장에 힘을 쏟으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는 공조·전장·메디컬 테크놀로지·로봇 등 분야의 M&A 추진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반도체 분야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자금력을 비메모리 분야 확장에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글로벌 투자사 KKR 자금을 유치한 삼성SDS도 굵직한 M&A 기회를 모색할 전망이다.
SK스퀘어는 SK하이닉스발 수혜에 힘입어 반도체 소재 기업 등 인수 가능성을 살피고 있다. 최근 주가가 고공행진 중인 두산그룹은 SK실트론 외에도 AI, 원전, 전자 등 분야에서 M&A를 추진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롯데렌탈 모회사 호텔롯데는 롯데뉴욕팰리스 호텔 부지를 인수했다. 시장에 각종 유동성이 풍부하기 때문에 이런 거래들을 추진하는 데 부담이 줄어들었다는 평가다.
한 금융사 임원은 "국민성장펀드나 공급망안정화기금 등 유동성이 풍부하기 때문에 기업이 돈이 없어서 움직이지 못할 상황은 아니다"며 "M&A든 설비 투자든 활발한 움직임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입력 2026.06.09 07:00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6년 06월 07일 07:00 게재
반도체·자본시장 호황에 유동성 부담 완화
자산 매각으로 버티던 대기업 분위기 변화
매각 중단 혹은 속도 조절하는 기류 나타나
여유 있는 기업들은 성장 투자 고민하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