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투자 전환점된 '코로나'와 '그린뉴딜'…키워드는 '환경'
입력 2020.08.11 07:00|수정 2020.08.10 16:24
    코로나로 환경 문제 '생존과 직결' 인식
    증권사·운용사 등 자본시장 준비 태세
    '그린뉴딜'에 기업들 ESG채권 발행 늘 듯
    단순 '착한투자' NO…"투자자·기업 인식 바꿔야"
    • 코로나 여파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에도 변곡점이 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지배구조(G)에 비해 관심을 받지 못했던 환경(E) 영역의 중요성이 커졌다. ‘한국판 뉴딜 정책’의 3대 핵심 분야에 ‘그린 뉴딜’이 포함되면서 ESG채권을 통한 기업들의 자금 조달도 증가할 것이란 관측이다.

      선진국에선 오래 전부터 '환경'을 ESG 투자의 최우선 고려 요소로 꼽아왔지만 국내에서는 비교적 비중이 적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ESG 고려, 특히 환경(E) 요소의 중요성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다는 평이다. 전염병, 지진, 태풍, 홍수 등 기후 변화로 사람들이 위기감을 느끼면서다.

      국내에선 재벌그룹이란 특수한 산업구조 때문에 지배구조 문제가 항상 ‘뜨거운 감자’였던 점도 환경과 사회 요소가 관심을 받지 못한 이유다. 그러나 최근에는 삼성,현대자동차 등 일부 그룹을 제외하면 상당수의 대기업들이 지주체제를 정비했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감시 하에 순환출자 문제도 많이 정리가 된 상태라는 평가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확실히 코로나 전후로 국내 ESG 투자의 초점이 환경(E)과 사회(S)로 이동하고 있다”며 “올해 2월 이후로 포트폴리오에서 환경 관련 비중을 대폭 늘렸다. ESG투자는 단순 ‘착한투자’가 아니라 재무·비재무적 요소를 모두 고려한다는 투자철학이기 때문에 수익률 면에서도 장기적 관점으로 지켜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 투자자들의 인식이 달라지면서 기업들의 자금 조달에도 변화가 올 것이란 관측이다. 여기에 정부가 2025년까지 국비 114조원을 포함한 160조원 규모의 ‘한국판 뉴딜’ 계획을 발표해 이유를 더했다. 관련 사업 자금 조달을 위해 기업들이 ESG 채권을 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ESG채권 시장 대부분은 ‘그린 본드(Green Bond;녹색 채권)’가 차지한다. 그린 본드는 신재생 에너지 등 친환경 프로젝트나 사회기반시설에 투자할 자금 마련을 위해 발행하는 채권이다. 최근 지구 온난화, 환경 보존 등 사회적 관심을 반영해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2019년 글로벌 그린본드 발행 규모는 2600억달러(한화 약 309조원)로 2018년 대비 51%가 증가했다.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그린본드는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과 은행지주 발행이 주를 이뤘다. 최근에는 비금융 기업들도 직접 그린본드를 발행하고 있다. 조달된 자금 대부분은 에너지, 건물, 운송 분야에 쓰이고 있다.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에 맞춰 개별 기업들이 ESG 채권 형태로 자금을 조달하려는 움직임이 더 많아질 것”이라며 “금리를 덜 주더라도 해외투자자를 포함해 ESG 투자를 정책적으로 늘리는 연기금 투자자들 수요를 확보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자체 ESG 등급을 올리는 데도 유리한 면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다만 시장이 커지는 만큼 제도적 관리와 함께 발행사-투자자 사이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ESG 투자와 관련한 주요 이슈인 ‘그린 워싱(Green washing)’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린 워싱’은 ESG 채권 발행자가 ESG 이미지를 내세워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고 세제 혜택을 활용하지만, 실제 자금 집행에서 사전에 계획된 투자 약속을 지키지 않는 행위를 말한다.

      또 글로벌 투자자들의 높은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국내 기업들의 의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외 연기금은 환경,인권 등의 조건을 꼼꼼하게 따지는 데 정평이 나있다. 특히 유럽은 일반 기관투자자들도 기준이 상당히 높다.

      예를 들어 지난 6월 스웨덴의 제7공적연금기금(AP7)은 SK그룹의 지주사인 SK㈜를 투자 대상에서 제외했다. 페루 가스 프로젝트 과정에서 인권침해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SK그룹의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000년부터 페루 카미시아 가스전 개발에 참여해 가스와 석유 제품을 생산해왔다. 이후 해당 사업의 3대 주주로 남아있다가 지난해 9월 이사회에서 지분 전량인 17.6%를 매각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SK이노베이션 측은 “해당 부분을 AP측에 충분히 소명했고, 지분참여이기 때문에 실제 운용권이 없을 뿐더러 그마저도 현재는 매각 진행 중”이라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ESG업계 관계자는 “ESG를 보는 기준 자체가 글로벌 투자자와 국내 기업들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SK의 페루 광구 이슈도 회사는 ‘우리는 관계 없다’는 입장이지만 스웨덴 연기금 입장에선 SK같은 큰 회사가, 3대주주로 큰 돈을 투자한 투자자인데 개발 과정에서의 ESG 침해 요소들을 스크리닝 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본 것”이라며 “국내 기업들도 ESG 관리를 단순 ‘홍보성’이 아니라 ‘서플라이 체인(supply chain)’의 모든 과정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