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난항·불어난 인건비…유니콘도 권고사직 ‘칼바람’
입력 23.04.17 07:00
토스·직방·펄어비스…유니콘도 '권고사직' 논란
투자 빙하기·성장 둔화하면서 인력 감축 불가피
"누적된 노동 이슈" 자금난과 맞물려 수면 위로
  • “3명만 모여도 ‘다음은 누구일까’ 이야기가 나온다” 

    최근 주요 스타트업들이 잇다른 구조조정에 나서며 업계 내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기업)’도 예외 없이 ‘권고 사직’이 이어지는 분위기다. 시장 악화로 투자금 유치가 어려워지자 적자 사업부 정리, 신사업 철수 등 긴축 경영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유니콘들은 업력이 10년차 내외로 접어들면서 성장 둔화와 맞물려 대기업에서 나올 법한 노동 이슈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토스(비바리퍼블리카)에 ‘권고사직’이 횡행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직장인 커뮤니티에는 ‘자발적 퇴사를 당했다’는 토스 직원들의 주장이 이어졌다. 성과평가가 객관적인 측정 시스템 없이 동료 간의 평가에 의존하고, 사내에 ‘토스라이팅(토스와 가스라이팅의 합성어)’ 문화가 만연하다는 주장이 더해지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토스는 수년 전부터 저성과자를 ‘썩은 사과’로 명시하는 등 ‘확실한 보상, 철저한 성과주의’를 표방해 내부 절차(스트라이크 제도)에 따른 퇴출로 악명(?)이 높았다.

    기존에도 퇴출 제도가 있지만, 후한 보상을 앞세워 공격적인 인재 영입에 나서던 ‘토스마저’ 국내외 투자 시장 환경 여파를 피하지 못하고 인건비 관리에 나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연결 기준 토스의 영업손실은 총 2472원으로 전년(1796억원)보다 큰 폭으로 증가했다. 토스는 지난해 1조원 규모의 상장 전 투자 유치(프리IPO)를 추진했지만 7000억원 규모의 자금만 충당했다. 이르면 올해로 예정됐던 상장 일정도 미뤄졌다. 지난달엔 토스뱅크가 출범 1년 반만에 일곱번째 유상증자에 나섰는데, 불어난 인건비 또한 자본 확충의 한 배경이라는 해석이 제기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업 특성상 성과가 즉각 나타나지 않으니 ‘오래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문화가 됐다”며 “원래도 토스의 인사 제도는 호불호가 많았는데 가파른 성장을 할때는 공격받지 않았지만 성장이 둔화하고 그동안 퇴사한 직원들도 쌓여 화제가 되는 듯하다”고 말했다.

    프롭테크 유니콘 직방도 최근 일부 직원을 대상으로 권고사직을 진행했다. 삼성SDS의 IoT사업 인수, 대규모 개발자 채용 등 투자를 이어간 가운데 부동산 거래시장이 침체되면서 수익성이 악화한 탓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직방은 전년(82억원)에 비해 급증한 371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앞서 지난달 게임업계 유니콘인 펄어비스도 인사 논란으로 내홍을 겪었다. 직장인 커뮤니티에 “일주일에 십여 명이 ‘당일 권고사직’을 당했다”는 주장이 올라오며 논란이 커졌다. 지난달 19일 정경인 대표가 “사내 인사 정책과 기업 문화를 개선하겠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 인력 이동이 잦고 불확실성이 높은 유니콘 및 스타트업 업계에서 권고사직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근속연수가 짧고, 대기업처럼 오래 근속한다고 보상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 계속 이직을 하면서 인력이 도는 선순환이 나타나는 시장이다. 지난해 기준 토스의 평균 근속 연수는 1년 8개월 정도다. 또한 한 사람이 '일당백'을 해야하는 구조상 ‘월급 루팡(일을 하지 않고 월급을 받음을 지칭하는 신조어)’ 직원의 경우 연차와 상관없이 권고사직을 당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최근엔 비교적 안정적으로 여겨지던 유니콘, 예비 유니콘, 유망 스타트업 너 나 할 것 없이 인력 감축에 나서는 분위기가 감지되며 긴장감이 고조됐다. 주요 스타트업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인력들이 구직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금 당장 퇴사를 하지 않아도 불안감에 이직을 알아보는 재직자들도 늘어난 분위기다. 

    회사 입장에선 시장 경색으로 투자 유치가 어려운데 실적은 꺾이다보니 '인건비 줄이기'가 불가피하다. 투자자들도 손익분기점(BEP)을 넘기지 못하는 사업은 재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그렇다보니 통상 적자 사업부인 신사업부터 정리에 나서고 있다. 매각하려고 해도 ‘몸집이 작아야’ 잘 팔리다보니 선제적인 조직 슬림화에 나서고 있는 것이란 분석이다. 

    고연봉 개발자를 대거 채용하며 인건비 부담이 높아진 점도 고려된다. 전체 연봉 테이블이 높아지면서 주니어 개발자들까지 ‘비싸게’ 써야 하는 부담이 커졌다. 2021년 직방은 개발자 초봉으로 6000만원을 제시하고, 재직자 연봉을 2000만원씩 인상하는 등 공격적인 인재 영입에 나선 바 있다. 지난해 직방의 판매·관리비 지출 중 급여 지출은 234억원으로 전년(104억원)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한 대형 스타트업 관계자는 “유니콘들도 보수적으로 변하면서 개발자들조차 몸을 사리는 분위기다. 한편으론 개발자 구인난이 여전해 베트남 등 동남아 개발자 채용을 늘리는 회사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예비 유니콘으로 주목받던 회사들은 '생존용' 고강도 구조조정에 나섰다. 농업기술 스타트업 그린랩스는 최근 희망퇴직 및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지난해 1월 1700억원의 투자를 받으며 8000억원의 몸값을 인정받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과 고연봉 인재 채용 등으로 재정이 악화했다. 멀티채널네트워크(MCN) 기업인 샌드박스네트워크는 지난해 말부터 구조조정 및 일부 사업 매각에 돌입했고, 피트니스 스타트업인 ‘다노’도 지난해 신사업 철수로 인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