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부동산 투자…금융사 “팔자”, 연기금 “늘리자”, 外人 “쓸어담자”
입력 2021.09.27 07:00
    취재노트
    해외 부실자산 잇따라 파는 국내 금융기관들
    연기금은 해외 포트폴리오 확대
    “코로나는 기회”…외국계 펀드들 저가매수 행렬
    • 코로나가 창궐하기 직전,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 속에 해외 부동산·인프라투자는 국내 투자자들에게는 고(高)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기회였다. 초대형 투자은행(IB)의 라이선스를 획득한 국내 금융기관들은 물론 중·소형 증권사, 보험회사, 일반 기업 너나할 것 없이 해외진출을 선언했다. 성공사례도 물론 찾아볼 수 있었지만 코로나가 상수가 된 현재는 리스크가 더 크게 부각한다.

      코로나로 인해 각국을 오가는 여행객은 사실상 사라졌고 해외 호텔과 리조트, 대형 오피스 등 국내 자본이 주로 앞다퉈 투자했던 자산들의 부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차주가 이자를 지급하지 못하는 디폴트 상황에 빠진 포트폴리오가 늘었다. 해외 투자가 한창이던 2017~2018년 투자건들을 회사 장부에 손실로 반영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왔다.

      국내 증권사들의 해외대체투자 펀드의 설정액 증가세는 2019년 말을 기점으로 크게 둔화하기 시작했다. 증가세와 별개로 설정액 자체는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금융지주계열을 비롯한 국내 대형 증권사들의 해외 대체 자산은 유럽지역의 오피스 빌딩, 미주 지역의 호텔 자산에 편중돼 있는 점이 눈에 띈다.

      국내 금융기관의 실패한 해외 투자 가운데 대표격은 ‘더 드루 라스베이거스’이다.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최근 총 3000억원의 투자금 전액 손실을 확정했다. 사실 해당 호텔은 최초 투자당시 가치가 2조원이 넘게 평가 받은 우량 자산이었기 때문에 국내 투자자들을 위험성보단 수익성에 베팅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개발사업은 지연됐고, 지난해부턴 현지 시행사가 선순위 대출자(JP모건)에 이자를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인 기한이익상실(EOD) 상황까지 몰리게 됐다.

      유례 없는 손실 사태, 그리고 부실 징후가 드러나기 시작한 포트폴리오가 하나둘 늘어나면서 국내 금융기관들은 과거 투자한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위치한 최고급 호텔 ‘웨스트할리우드 에디션 호텔 앤 레지던스’의 메자닌 대출 채권 약 2100억원을 매각하는데 성공했다. 지난 6월 원리금 상환을 앞두고 차주가 만기 연장을 요청했으나 채무불이행 위험성이 높다는 판단에 곧바로 매각에 나섰다.

      국내 한 시중은행은 최근 미국 시카고에 호텔의 중순위 채권을 미국 부실채권(NPL) 전문투자사에 매각했다. 긴 협상 끝에 할인율을 거의 적용하지 않고 투자 원금 수준의 금액으로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금융기관은 원금을 건지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해당 호텔의 개발사업이 정상화 한다면 투자회사는 기존의 미지급 이자를 챙기는 것은 물론, 추후 투자차익을 노릴 수 있게 된다.

      이 외에도 국내 대형 증권사 1곳은 해외 리조트에 개발사업 관련한 채권의 매각을 시도하고 있다. 국내 금융지주계열 증권사 1곳은 뉴욕의 M호텔, 베트남의 D호텔의 투자 자산을 매각중이다.

      금융당국의 깐깐해진 심사, 보다 촘촘해진 신용평가 기준 등 자산건전성을 요구하는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되고 있다는 점은 금융기관들이 해외 자산에 속도를 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금융당국은 ‘대체투자 가이드라인’ 등을 마련해 지난 3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대체투자의 조직 구성부터 사후관리까지의 전 과정을 일원화 해 투자자 보호에 힘쓰겠다는 취지다. 해외 자산의 경우 현지실사와 외부자문을 의무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2023년부터는 새로운 건전성 규제(IFRS17, K-ICS)가 도입되고 곧 시행될 정상화·정리계획(RRP) 제도도 상당한 부담이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사실 국내 금융기관들의 경우 자산건전성 규제와 더불어 내부적으로 충당금을 쌓아야 하는 이슈 등 NPL로 여겨지는 자산을 오랜기간 보유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며 “얘기치 못한 코로나 상황이 닥치면서 장부상 손실이 예상되긴 하지만, 상황이 호전된다면 오히려 더 큰 기대수익을 거둘 수 있는데 이 같은 기회를 놓치는 것이 다소 아쉬운 면도 있다”고 평가했다.

      국내 금융기관들의 이 같은 ‘팔자’ 행보와 달리 국내 연기금, 공제회 등은 해외 대체자산 확대 기조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공무원연금은 해외 부동산 인프라 투자를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웠고, 우정사업본부 또한 우체국금융 경영악화를 대비해 해외주식, 대체투자 등 고위험 자산 비중을 확대했다. 교직원공제회, 노란우산공제회의 행보도 크게 다르지 않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로 인해 한동안 잠잠했던 국내 LP들의 해외 투자 검토가 최근 들어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며 “해외 투자에 있어 물리적인 제약은 국내 금융기관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중장기적인 해외투자 확대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적극적으로 검토에 나서고 투자기회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부실채권(NPL)로 치부되는 해외 자산을 국내 기관들이 매각에 나서는 동안 이를 기회로 삼는 외국계 투자자들도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보다 더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저가매수 기회를 옅보는 투자자들이다. 자산분석업체 프레킨(Preqin)은 지난해 12월 기준 부실자산에 투자하려는 사모 부동산 자금 규모는 약 1420억달러(약 17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 국내 기관들이 보유한 포트폴리오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스타우드캐피탈(Starwood), 콜로니캐피탈(Colony) 글로벌 운용사들이 주요 후보로 거론된다.

      글로벌 부동산 시장에서 각광받던 국내 자본의 활약은 다소 주춤하다. 코로나 여파로 인한 불가피한 측면을 부정할 순 없지만, 정부의 규제 또는 내부 감독 강화 등에 못 이겨 일련의 자산 매각 과정들이 쫒기듯 발생하고 있는 상황은 다소 아쉽다. 코로나 상황을 10년만에 가장 큰 기회로 여기는 글로벌 투자자들에게도 코로나 상황은 똑같은 상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