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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퇴직연금의 기금화 논의가 최근 가속화하면서, 은행과 증권사를 비롯한 금융권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단순한 '아이디어' 차원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컸지만, 이제는 시기의 문제일 뿐 기금화 자체는 업계에서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국내 퇴직연금 사업자의 가장 큰 두 축인 은행과 증권사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는 가운데, 은행권의 고심이 더 커질 것이란 평가다.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 시행 후 시장 점유율을 증권사에 빼앗기고 있는 상황에서, 기금화가 시행되면 외부위탁운용관리(OCIO) 조직이 증권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약한 은행권의 타격이 더 클 것이란 관측이다.
1일 금융권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을 대선 공약에 넣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안도걸 의원은 퇴직연금 기금화를 위한 입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안 의원은 현재 당 내 정책 그룹인 미래경제성장전략위원회의 수석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한정애 민주당 의원이 국민연금이 100인 초과 사업장의 기금형 퇴직연금 사업자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을 때만 하더라도, 금융권에서는 이를 크게 의식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다만 이후 관련 논의가 정부와 국회를 중심으로 빠르게 진행됐다. 올해 2월에는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됐고, 관계부처인 고용노동부도 지난 3월 퇴직연금 기금화와 관련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금융감독원 퇴직연금부서도 올해 수익률 제고를 목표로 고용노동부와 기금화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고용노동부는 기금화 자체에는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국민연금이 이를 운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퇴직연금 운용 주체로 국민연금이 참여하는 것을 차치하면, 기금화 자체는 정부와 여야 모두 공통된 의견을 모이고 있어 '시간문제'라는 평가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퇴직연금 기금화와 관련해 현실화 가능성을 낮게 봤지만, 올해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라며 "현재 대선 공약으로도 포함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데, 이렇게 되면 사실상 기금화는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 퇴직연금 시장은 현물이전 제도가 시행된 이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여전히 은행권이 전체 적립금 규모의 50% 이상을 점유하며 최대 사업자 지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수익률을 앞세운 증권사가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1분기에만 증권사의 퇴직금 적립금 성장률은 3.5%를 기록하며 은행권 성장률(1.4%)을 두 배 이상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은행권은 최근 퇴직연금 부서의 조직 개편을 단행하는 등 점유율 수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퇴직연금 기금화가 현실화할 경우, 은행권의 부담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새로운 운용 주체의 등장은 민간 사업자인 증권사 입장에서도 달갑지 않은 것은 분명하지만, 증권사는 대형사들을 중심으로 OCIO 조직을 갖추고 있어 은행 대비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다.
기금형 퇴직연금은 연금자산을 관리할 별도의 수탁법인을 설립하고, 운용 전문조직에 위탁해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기금화될 경우 기존의 수탁금을 공적 운용 주체에 넘긴 후 입찰 등을 통해 위탁 운용 지위를 따내야 한다. 과거 고용보험기금과 주택도시기금 등의 자금을 위탁 운용해 본 경험이 있어 관련 조직을 갖추고 있는 증권사들이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은행들도 OCIO 사업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규제 등으로 인해 직접적인 운용보다는 수탁과 자문 중심의 업무에 그친다는 설명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퇴직연금이 기금화는 증권사 입장에서도 달갑지 않은 것은 분명하지만, 증권사보다는 은행들의 타격이 더 클 것"이라며 "증권사들은 과거 OCIO 사업 등으로 이미 관련한 체계를 갖추고 있고, 시장에서 트랙 레코드를 쌓은 경험이 있는 반면 은행이나 보험사는 관련한 경험이 없다"라고 말했다.
최근 증권사들은 비용과 수익성 등을 이유로 축소해왔던 OCIO 조직을 다시금 확대하는 모양새다. 그동안 자산운용사들만 가능했던 연기금투자풀 주간운용사 선정 방식이 개편되면서 증권사들도 진출이 가능해진 까닭이다. 지난해 기준 수탁고 규모만 62조원에 달해 복수의 증권사들이 입찰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NH투자증권은 기존 OCIO 사업부 산하에 있던 기관커버리지본부를 홀세일사업부로 이관하며 OCIO 역량을 강화했고, KB증권도 올해 1월 OCIO 운용과 OCIO 솔루션 조직을 OCIO 솔루션부로 통합하며 관련 부서에 힘을 줬다.
증권사들이 다시금 OCIO 조직을 확대하는 데는 당장 연기금투자풀 입찰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지만, 장기적으로 퇴직연금 기금화 이후의 상황을 대비하는 목적도 일부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OCIO 조직은 그동안 투입 비용 대비 수익성이 낮고, 계열 운용사들이 전담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증권사 입장에서는 사업을 확대할 유인이 낮았다"라며 "하지만 최근 연기금투자풀 선장 방식이 개편되고, 향후 퇴직연금이 기금화돼 운용될 경우도 생각하면 장기적으로 OCIO 조직을 확대할 공산이 크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퇴직연금 기금화 대선 공약 검토
민간 사업자 두 축 은행, 증권사는 셈법 복잡
OCIO 경험 있는 증권사가 은행보다 경쟁력
증권사들, 연기금투자풀 앞두고 관련 조직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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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5월 01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