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랠리에 '표정관리' 들어간 유상증자 기업들...무색해진 '중점심사'
입력 25.06.19 07:00
코스피 3000 눈앞…신주 발행가 웃도는 주가에 유증 기업 청신호
유증 중점심사에 고전했던 한화에어로, '황제주'도 눈앞에
정책 테마주 신고가 행진… LS마린·포스코퓨처엠도 반등세 복귀
증권가선 "3분기 초까진 증시 강세" 전망
  • 국내 증시가 랠리에 돌입하며 유상증자를 추진 중인 기업들이 ‘골든타임’을 맞았다. 신주 예정발행가보다 주가가 높은 상황이 이어지면서, 주요 기업들의 유상증자 성공 가능성도 높아졌다. 

    금융감독원은 새 정부 출범 후에도 '유상증자 중점심사'에 역점을 두겠다고 공언한 상황이지만, 주가가 오르며 주주들의 불만이 사라지자 명분 찾기에 고심하는 모양새다. 

    올해 상반기에는 유상증자 발표가 줄을 이었다. 삼성SDI,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포스코퓨처엠 등이 조(兆) 단위 유상증자를 연달아 공시했다. 증자 발표 직후 이들은 '주주 가치를 외면하는 자본시장의 적' 수준으로 낙인찍히며 여론의 집중 공세를 받았지만, 현 시점에서는 증자에 대한 불만이 거의 사라져버린 상황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허니문 랠리'가 유상증자 기업들에 뜻밖의 호재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2주간 코스피 지수는 7%가량 상승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의결 이후 2달간 코스피 상승률은 20%에 달한다. 

    '상법 개정안' 등 주주가치 존중을 핵심 의제로 내건 새 정부의 출범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수치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기관 방문지로 한국거래소를 선택하며 증시 부양 의지를 드러냈고, 불공정거래 근절과 배당 확대 등을 공언했다. 

    유상증자는 일반적으로 주가가 상승세일 때 추진해야 흥행 가능성이 커진다. 할인된 가격에 신주를 청약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주가가 높을수록 같은 주식 수로 더 많은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서다. 반대로 주가가 하락하면 신주의 매력도는 낮아지고 청약률은 저조해지며, 결과적으로 조달 금액도 줄어드는 구조다.

    한 증권사 ECM 관계자는 "연초 이후 미국 증시가 주춤하며 코스피를 비롯한 신흥국 증시가 각광받자 주요 기업들이 잇따라 유상증자를 결정했는데, 이후 새 정부 출범 기대감으로 증시 레벨이 업그레이드되며 주주가치 희석 부담감이 대부분 사라졌다"며 "연초 증자를 통한 자금 조달을 결정한 회사들은 대부분 무난히 조달을 완료할 수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 3개월 전까지만 해도 이 같이 극적으로 조달환경이 좋아질 거라는 예상은 거의 없었다. 반대로 금융감독원이 유상증자 중점심사 제도를 도입하며 증자가 까다로워졌다는 우려가 더욱 컸다. 실제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두 차례 정정 공시를 요구받았고, 조달 금액도 3조6000억 원에서 2조3000억 원으로 줄었다. 삼성SDI와 포스코퓨처엠 역시 중점심사 대상에 포함돼 신고서를 정정해야만 했다.

    대선 정국 전후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유상증자 발표 직후 주가가 59만원대까지 떨어졌지만, 이후 꾸준히 반등해 최근 90만원대를 돌파했다. 방산 랠리 와중에 유증을 단행해 주주들의 반감을 샀지만,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증시 분위기와 맞물리며 우려를 상쇄한 셈이다.

    정책 수혜주들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이달 들어 상장 종목 5개 중 1개꼴로 52주 신고가를 기록했고, 코스피 상장 종목 중 29%가 신고가를 경신했다. 증권사, 지주사뿐 아니라 기후·에너지 관련주까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의 기후에너지부 신설 및 신재생에너지 확대 공약에 대한 반응으로 풀이된다.

    LS마린솔루션은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정책 수혜주'로도 꼽히며 유상증자 당시 신주 발행가 수준을 크게 웃도는 주가 흐름을 보이고 있다. 당초 신규 설비 투자 공시와 유상증자 공시 간 '시간 차'로 비판을 받았으나,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주가는 3만4600원까지 상승하기도 했다.

    포스코퓨처엠 역시 유상증자 발표 후 주가가 급락했다가 대선 이후 반등했다. 12만원 초반에서 9만원대까지 떨어졌던 주가는 이차전지·리튬 업종의 전반적인 상승 흐름과 맞물려 지난달 말부터 반등, 현재는 12만원대 수준을 회복했다. 지난달 말 청약을 마무리지은 삼성SDI 역시 새 정부 출범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가가 17만원선까지 오르며 구주주 청약률 102%를 기록, 자금 조달을 무난히 마쳤다.

    증자 성공이 가시권에 들며, 이들 기업들은 표정관리에 한창이다. 한 대기업 유상증자 주관사단 관계자는 "경영진에게 증자 이후 IR 및 주주환원 강화가 필요하다는 제안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며 "상법 개정안 통과가 가시화하며 주주가치가 핵심 가치로 떠오른 가운데, 정부에 '미운털'로 찍힐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당분간 증시 강세가 이어질 것이란 기대가 크다. 대신증권은 이재명 정부의 정책 드라이브와 금리 인하, 하반기 추가 추경 등을 통해 밸류에이션 정상화만으로도 코스피가 3000선을 넘어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선행 EPS 기준 코스피의 적정가는 이미 2970포인트에 근접했다는 평가다. 

    예정된 초대형 유상증자들이 대부분 무리없이 흥행할 전망인 가운데, 곤란해진 건 금감원뿐이라는 뒷말도 나온다.

    금감원은 지난달 말 '자본시장 부문 성과 및 향후 계획'을 발표했다. 사모펀드(PEF)에 대한 검사 확대와 함께, 유상증자 중점심사 제도 역시 일관성있게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홈플러스 사태' 및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상증자 논란'이 잇따라 일어나며 크게 높인 감독 수준을 현행 유지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이는 큰 의미가 없어져버린 이슈가 돼버렸다는 평가가 주류다. 주주들이 증자로 인한 주주가치 희석이 아니라, 할인 증자 참여에 따른 기대수익률을 따져보고 있는 상황에서 유상증자에 대한 심사 강화는 '딴지걸기'로 비칠 수 있는 까닭이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이미 신고서 효력이 발생되긴 했지만, 예컨대 현 시점에서 대략 50% 가까운 수익률이 기대되는 한화에어로 증자 일정이 금감원에 의해 2주 이상 미뤄진다고 하면 주주들의 불만은 금감원으로 향할 것"이라며 "금감원 내부에서도 한두 차례 정정을 요구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있느냐는 회의론이 들려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