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사회주의' 염려하는 재계와 투자자들…李정부의 국민연금 어떻게 달라질까
입력 25.09.11 07:00
Invest Column
국민연금 활용법 고심중인 정부·정치권 인사들
국민연금 이사장 9월, CIO 12월 임기 만료
코스피5000특위, 국민연금 강력한 주주권 행사 권고
이찬진 금감원장, NPS 사정권 두겠단 움직임도
  • 우리나라 국민들의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은 적립금 1269조원(2025년 기준)으로 전세계 공적연기금 자산규모(AUM) 기준 2위를 자랑한다. 그 규모만큼이나 주식·채권·부동산·대체 등 우리나라 자본시장에서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보건복지부가 주무부처인 국민연금은 정권이 교체할 때마다 이사장의 교체도 기정사실처럼 여겨져왔다. 실제로 과거 이사장 가운데 임기를 모둔 채운 인사는 다섯손가락에 꼽는다. 이사장 교체기마다 기금운용의 전문성과는 거리가 먼 정치권 인사들이 하마평에 올랐다. 그러다보니 최고투자책임자(CIO) 역시 자연스레 '정무적' 감각을 요구받는 자리가 됐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지 100일을 맞았는데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은 이달 말(9월31일), 서원주 CIO는 올해 말(12월26일) 임기가 만료된다. 관행(?)대로라면 새로운 인선이 있을 전망이지만, 아직은 이렇다 할 하마평이 나오진 않는 상황이라 후임자 임명 전까진 두 인사 모두 직무를 계속 수행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 막론하고 화두로 던졌던 '국민연금 개혁'은 합의(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3%)를 마쳤다. 앞으로의 논의는 국민연금이 1200조원 넘는 자금을 효율적으로 굴리고 또 수익률을 극대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런데 수익률 제고 방안이 마련되기 앞서 새정부 인사들은 국민연금 활용 방안에 고심하는 모습으로 읽힐만한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코스피5000특별위원회가 앞장섰다. 여당은 기관투자가가 권고적 주주제안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단 방침을 세우고, 기관투자가들의 스튜어드십코드 이행 여부 역시 보건복지부가 아닌 금융당국에서 평가하는 법안을 준비한다는 계획으로 전해진다.

    지난 1일 코스피5000특위 주체로 열린 '스튜어드십코드 개선 및 이행 활성화 방안 모색을 위한 좌담회'에선 국민연금이 중심에 섰다. 김남근 의원은 "2016년 도입한 이후 9년이 지나도록 스튜어드십코드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국민연금 실무진을 직격했고 이후 일부 기업을 언급하며 더욱 적극적인 스튜어드십코드 이행을 주문했다.

    사실상 금융당국의 수장이자 이재명 대통령의 복심으로 꼽히는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의 생각도 궤를 같이 한다. 과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으로 활동했을 당시 이 원장은 "MBK는 먹튀의 전형"이라고 언급하며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활동을 주장했다. 금감원은 이 원장의 취임 직후 MBK파트너스에 대한 수사를 재개했다.

    사실 MBK의 홈플러스 사태 관련 내용은 이미 검찰에 이첩된 사건이다. 금감원이 수사를 다시 시작하는 과정에선 국민연금이 도마 위에 올랐다. 홈플러스에 대한 투자 과정, 즉 연기금의 출자 과정까지 금감원이 들여다보겠단 의지를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두고 사모펀드(PEF)업계에선 사실상 국민연금을 비롯한 주요 출자기관(LP)들을 금감원의 사정권에 두겠단 의지로 해석하고 있다.

    정부의 조직개편으로 금감원은 내년부터 공공기관으로 지정된다. 감독업무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난 2009년 공공기관 지정에서 해제된지 약 16년만이다. 금감원이 점점 정치권의 외풍(外風)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는 반면, 그 영향력은 금융기관 전반은 물론 연기금과 공제회까지 확대해나가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국민연금의 주주권행사가 늘어나 향후 재계와 금융시장에서 국민연금의 영향력이 더욱 막강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자본시장은 물론 재계 관계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실 이찬진 금감원장은 과거 기금운용위원회에서 투자기업에 대해 국민연금이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스튜어드십코드의 활성화를 주장하는 여당에 금융당국 수장의 의견, 각종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합세한다면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에 깊숙하게 개입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연금이 사회적 논란에 대해 일일이 답을 내려 기금 운용에 반영하고, 투자 회사의 경영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상황에선 기업의 자유로운 경영활동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재계는 이미 국민연금이 정치 권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 이로 인해 경영의 자율성을 보장받지 못해 휘둘리는 상황을 경험해 본 전례가 있다. 과거 포스코그룹과 KT 등이 그 대상이었다.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이 회장 선임 절차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지 엿새만에 최정우 전 포스코그룹 회장(차기 회장 후보)이 낙마했고, 서원주 CIO가 취임 이튿날 투명성 문제를 거론하자 KT는 선임절차를 정비하느라 9개월가량 대표이사를 선출하지 못했다.

    이제까지 국민연금은 재계와 자본시장에서 '주연'이라기 보단 '조연'에 가까웠다. 운용 규모가 작아서 또 그 영향력이 미미해서가 아니라, 투자자로서 경영에 대한 자율성을 보장하겠단 취지에 가까웠다. 물론 경영진의 일탈, 과도한 권력의 집중, 미흡한 주주환원, 경영능력의 부재 등 일반 투자자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행태에 대해선 강력한 주주권 행사가 필요하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가진 권력을 남용하면 결국 '관치(官治)'를 넘어 '연금 사회주의'의 논란으로 이어질 것이란 점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