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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노사가 2025년 임금 및 단체협약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21차에 달하는 교섭 끝에 양측이 한 발씩 물러서며 가까스로 이견을 좁혔지만, 노조와 사측의 확실히 다른 현실 인식과 첨예한 의견 대립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협상이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며 지난 6년간 현대차그룹이 자랑스럽게 내세웠던 무분규 협상 타결 기록도 결국 깨졌다. 현대차를 둘러싼 비우호적인 사업 환경이 지속하는 가운데 노무·인사 리스크가 지속적으로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단 지적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9일 사측과 노조는 ▲기본급 10만원 인상 ▲경영성과금 350%+700만원 ▲ 하반기 위기극복 격려금 100%+150만원 ▲글로벌 자동차 어워즈 수상 기념 격려금 500만원+주식 30주 ▲노사공동 현장 안전문화 구축 격려금 230만원 ▲재래시장상품권 20만원 지급 등의 조건으로 임단협 잠정합의안을 마련했다. 여기에 각 수당 산정의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에 명절 지원금과 여름 휴가비, 연구능률향상 수당 등을 포함하도록 했다.
이를 종합하면 이번 합의안은 기본급 10만원 인상에, 현금 약 1580만원, 성과급 450%, 주식 30주 지급 등이다.
노사의 본격적인 협상에 앞서 현대차 사측은 1차 제시안을 ▲기본급 8만7000원 ▲성과급 350%+1000만원 ▲주식 10주 지급으로 책정했다. 지난해 1차 제시안(10만1000원 인상에 1450만원+성과급 450%, 주식 20주)보단 대폭 낮춰 협상안을 제시했는데 글로벌 완성차 시장의 불황, 전기차 수요 감소 그리고 미국 발 관세 영향 등이 주요 배경이었다.
전년과 비교해 약해진 사측의 제시안과 달리 노조는 역대급 협상안을 들고 맞섰다. 올해 노조 측이 제시한 협상안은 기본급 14만1300원, 전년도 순이익의 30% 성과급 그리고 정년연장 및 주4.5일제 도입, 상여금을 750%에서 900%로 인상하는 방안이었다.
결론적으로 양측은 협상을 통해 기본급 및 성과급에 대한 이견을 다소 좁힐 수 있었지만, 이 과정에서 부분 파업 등과 같은 내홍도 겪어야했다. 협상 과정에서 현대차 노조가 파업을 단행한 건 6년만이다.
이번 합의안과는 별개로, 정년연장과 노동시간 단축 등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한 문제에 대해선 완벽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서 향후에도 논란의 여지가 있단 평가가 나온다.
일단 양측은 계속고용제(정년 퇴직 후 1년 고용+1년 고용)을 유지하지만 향후 법 개정에 대비해 노사 협의를 지속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또 '노사 공동TFT'를 구성해 임금제도 개선, 노동시간 단축 등의 논의를 지속하기로 했다. 현재 정치권에서 노동시간 단축 등의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양측의 추가 협상에도 속도가 붙을 수 있단 전망이 나온다.
올해 현대차 노조가 여느때보다 강력한 협상안을 제시한 데는 정부의 친(親)노동 정책이 한 몫 했다는 평가다. 실제로 대통령의 핵심 공약중 하나였던 노란봉투(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하면서 앞으로 현대차그룹의 노사 문제는 점점 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들게 됐다.
내년 3월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하청과 비정규직 노동자는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할 수 있게 된다. 원청은 노동쟁의를 문제삼아 노조와 노동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노란봉투법의 효과는 즉각 나타났는데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 현대차그룹 계열사 현대제철의 하청노조는 정의선 회장과 현대제철 전·현직 대표이사를 고소했다.
정부의 친노동 정책으로 인한 노조가 득세하는 상황은 향후 경영진의 활동에도 상당한 제약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법이 시행된 이후부턴 회사의 경영 판단까지 노조가 쟁의행위 대상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대규모 투자와 해외 진출 등과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도 노조가 제동을 걸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이 같은 노동 환경변화에 힘임어 기아 노조는 올해 임금 교섭에서 별도 요구안으로 '미래 자동차 산업 관련 국내 공장 전개'를 제시했다. 로봇과 수소차, 미래항공교통 등과 같은 신사업 제품을 국내에서 생산하도록 사측을 압박하고 있다.
현대차가 임단협 합의에 이르면서 기아 노사 역시 협상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이지만, 당장 사측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들이 붙으면서 협상이 장기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노조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현대차그룹이 추진중인 약 260억달러(약 36조원)에 달하는 대미 투자에도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이는 사측에서도 이미 심각하게 우려를 나타냈던 부분이다.
노란봉투법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하기 하루 전 정상빈 현대차 정책개발실장(부사장)은 "입법이 진행된다면 경영상 모든 내용을 노조와 합의해야 하기 때문에 사업 추진에 절차적·비용적 애로 사항이 많을 것"이라고 입장을 밝힌 바 있는데, 이같은 우려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단 평가다.
노무 리스크는 현대차그룹에는 상수와 같이 여겨져왔다. 사실 노사 갈등과 별개로 현대차그룹은 인사 시스템에 대해 더욱 신경을 써야하는 상황이 조성됐다.
최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합작공장에서 미국 이민당국에 의해 한국인 직원 300명이 체포된 사건을 계기로 인력 배치에 대한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이번 사태에서 현대차 직원들은 체포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으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한 대규모 미국 투자에 있어 인력 수급에 대한 불안정성이 지속할 수 있단 지적이다.
물론 비자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뒷받침 돼야한다. 그러나 현대차를 비롯한 국내기업들이 감당 가능한 투자 규모를 설정하고, 실제로 투자를 수행할만한 인력과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현대차그룹은 매년 연말경 정기 인사를 실시한다. 인사, 노무 리스크가 여느때보다 부각하고 있는 시점에서 해당 부문들에 대한 인사 역시 눈여겨볼만한 대목이란 평가다.
현대차 임단협 21차 교섭끝에 합의안 도출
움츠러든 사측 제시안 vs 역대급 협상안으로 맞선 노조
노란봉투법 시행까지 6개월, 이미 파업에 고발까지
해외 투자에 제동 건 기아 노조
연말 그룹 인사·노무 인선에도 주목해야
움츠러든 사측 제시안 vs 역대급 협상안으로 맞선 노조
노란봉투법 시행까지 6개월, 이미 파업에 고발까지
해외 투자에 제동 건 기아 노조
연말 그룹 인사·노무 인선에도 주목해야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9월 10일 13:39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