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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의 조직개편안이 발표되자 안팎이 술렁이고 있다. 정부는 금융위원회의 국내 금융 부문을 기획재정부로 넘기고, 금감원 소비자보호 기능을 따로 떼어내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표면적으로는 감독 기능의 독립성과 소비자보호 강화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내부에서는 “현장 대응력이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더 크게 제기된다.
분리 체제에서 홍콩 H지수 ELS 사태가 재발한다면 대응 공백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홍콩 H지수 ELS 사태는 수십만 명의 개인투자자가 원금 손실을 본 사건으로, 5개 은행과 6개 증권사가 동시에 얽혀 있었다. 당시 금감원은 검사국과 분쟁조정국이 동시에 움직였다. 검사국은 본점 차원에서 상품 심사와 승인 과정의 내부통제를 살폈고, 분쟁조정국은 영업점 판매 과정에서의 설명의무 위반 여부를 확인했다.
두 결과가 합쳐져 최종 조정안이 만들어졌다. 단순히 판매 직원의 책임 뿐만 아니라 본점 차원의 리스크 관리 실패까지 배상 근거로 삼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 배상 비율이 높아졌고, 은행들도 분쟁조정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검사국이 본점 차원의 사실관계를 확인해주면서 금융회사의 책임을 엄중히 물을 수 있었고, 그 결과 더 높은 배상비율 산정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투입된 인원만 100여 명에 달했다. 검사국 80명, 분쟁조정국 20명이 몇 달간 사실관계 확인과 자료 검증에 매달렸다. 단순한 민원 처리 수준이 아니라 금융사 내부 시스템 전체를 들여다본 셈이었다. 소비자보호 기능이 검사와 결합돼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결과 홍콩 ELS 분쟁조정안은 수용률이 90%를 넘었고, 대규모 민원이 비교적 단기간에 정리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직이 쪼개진다면 이 같은 대응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금소원에 별도 검사권을 준다고 하더라도 소비자보호라는 취지상 범위가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 본점의 시스템 부실이나 전사적 리스크 관리 문제까지 들여다볼 권한이 불투명하다. 설령 가능하다 해도 금감원과 금소원이 따로 움직이게 되면 중복조사로 비효율이 생길 수 있다. 금융사 입장에서도 동일한 사안에 대해 두 기관의 조사를 각각 응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법적 충돌 우려도 존재한다. 현행 금융위 설치법은 금감원 직원이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외부에 누설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기관이 나뉘면 검사 결과를 금소원에 넘겨주는 것 자체가 정보 유출로 볼 소지가 있다. 입법 보완 없이는 협조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인적 네트워크가 약화될 수 있다는 문제도 거론된다. 지금은 검사국과 분쟁조정국 직원들이 선후배, 동기 관계로 엮여 있어 자연스럽게 협조가 이뤄지지만, 제도적으로 분리되면 이런 협력 구조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제도적 보완 장치로 금소원장이 금감원장에게 공동검사를 요청하면 반드시 응하도록 하는 보완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다만, 현행처럼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협조하던 체제를 제도적 장치만으로 대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 여전하다.
쌍봉형 감독체계를 채택한 해외에서도 비슷한 문제는 반복됐다. 영국, 호주, 네덜란드 등은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보호 감독을 분리했지만, 기관 간 협력이 원활하지 않아 오히려 사태를 키운 측면이 있었다. 금융기관의 건전성 확보와 소비자 보호는 별개가 아니라 상호 연관돼있는 까닭이다.
임재진 서울시립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2022년 말 발표한 「우리나라 금융감독체계로서 쌍봉형모델 도입의 과제」 논문에서 쌍봉형 체계는 좋은 의도에서 출발했으나, 실제 운영 과정에서 권한 중복과 협조 부재로 여러 비판에 직면했다고 설명했다.
2009년 호주 최대 연금운용사 트리오캐피털 사기 사건은 그 단적인 사례다. 약 2400억원 규모의 손실을 낳은 이 사건은 두 감독기관 간 정보 공유 부실이 비판 받았다. 제보를 통해 호주증권투자위원회(ASIC)가 뒤늦게 조사에 착수했지만, 이미 다섯 차례 조사를 진행했던 호주건전성규제청(APRA)이 자료를 공유하지 않았던 것이다. 감독기관 간 협조가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서 피해가 확대됐다는 평가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홍콩 H지수 ELS 사태처럼 수십만 투자자의 배상이 걸린 사건은 검사와 분쟁이 동시에 맞물려야 신속한 결론이 가능하다"며 "기관이 쪼개지면 소비자 피해 구제가 늦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취재노트
정부, 금감원 소비자보호 기능을 분리해 금소원 신설 추진…내부 반발 거세
홍콩 ELS 사태 당시엔 검사·분쟁조정이 함께 움직이며 일관된 대응 가능
조직이 쪼개지면 공조 약화·자료 공유 충돌로 소비자 피해 구제 지연 우려
정부, 금감원 소비자보호 기능을 분리해 금소원 신설 추진…내부 반발 거세
홍콩 ELS 사태 당시엔 검사·분쟁조정이 함께 움직이며 일관된 대응 가능
조직이 쪼개지면 공조 약화·자료 공유 충돌로 소비자 피해 구제 지연 우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9월 17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