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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스자산운용의 경영권 매각 과정에서 뜬금없이 국민연금공단이 논란의 중심이 섰다. 힐하우스인베스먼트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자, 국민연금의 위탁운용사(GP) 교체 가능성이 거론되더니 출자를 철회할 가능성까지 확산했다.
일단 이지스가 "국민연금 측으로부터 출자 철회는 없다는 공식입장을 받았다"며 진화를 시도했는데, 국민연금은 이제까지 이렇다 할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앞으로 GP교체, 출자 철회를 비롯해 어떠한 대응을 하지 않더라도 이지스 사태를 계기로 국민연금을 향한 신뢰도엔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평이다.
이지스에 대한 제재(?)가 확정되지 않았지만, 무분별하게 논란이 확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은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그러자 국민연금의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얘기들이 나오기도 했다. 이번 사태가 논란의 중심이었던 부동산실, 또는 부동산실 인사의 자의적인 행동이었는진 명확하지 않다. 다만 일부의 일탈로 치부하더라도 그만큼 내부통제가 이뤄지지 않았던 건 분명해보인다.
국민연금이 이 같은 논란에 휩싸인 것은 새로운 이사장이 선임되기 전, 최고투자책임자(CIO)가 임기 말 레임덕 상황이란 점이 주효했다. 이미 전임 이사장의 임기는 지난달 9월 끝났고, 한 차례 연임에 성공한 서원주 CIO는 올해 말을 끝으로 기금운용본부를 떠난다. 이런 상황에서 정제되지 않은 메시지들이 시장에 퍼졌고, 부서별로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한 행위로 비쳐질 여지는 충분했다.
올해 홈플러스 사태로 곤혹을 치렀던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차원으로 확대해 본다면, 이지스 사태를 통해 국민연금의 영향력를 시장에 다시 한번 각인시키려는 의도로도 해석할 수 있단 평가다.
실제로 올해 초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돌입한 사건에서도 국민연금이 논란이었다. 상환전환우선주의 조건 변경에 대한 동의 여부가 도마 위에 올랐는데, 그럼에도 MBK파트너스에 3000억원의 출자를 결정하며 끈끈한 관계를 다시금 증명했다. MBK가 RCPS 조건 변경과 관련한 내용을 상세히 국민연금에 보고할 의무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수천억원을 투자한 포트폴리오의 동향조차 파악하지 못했단 지적과 함께 국민연금이 주도권을 잃어버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홈플러스 사태 이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실무진들은 매일같이 금감원과 국회 보고 등 격무에 시달려야 했다. 사고는 MBK가 쳤는데 정작 돈을 댄 국민연금만 난감한 상황이었다.
결국 금융감독원이 나서 MBK에 대한 제재를 검토하자 국민연금은 그제서야 "출자금 회수를 위한 법적검토를 하고 있다"며 수습에 나섰다. 물론 MBK와 국민연금 간의 계약관계를 살펴보면, 출자금 회수가 가능할 진 미지수다. 출자금 회수라는 초강수를 꺼내들었지만 명분이 '희미'하다보니 우리나라 자본시장을 넘어 외국인투자자들에게 어떻게 비쳐지질지도 고려해야 한다.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이지스 경영권 매각은 국민연금을 향한 세평을 반전시킬 카드였을지 모른다. 한 때는 부동산 투자 시장에서 가장 긴밀한 관계로 여겨졌던 국민연금과 이지스는 마곡 원그로브를 기점으로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부동산실장에 외부 인사가 영입되면서부턴 운용사에 대한 그립감을 더욱 강하게 쥐려는 모습도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이지스의 경영권 매각이 눈앞에 다가오자 '핵심 인력의 이탈 개연성'과 '펀드 정보 사전 유출 가능성' 등은 이지스와의 관계를 절연할 수 있는 그럴싸한 명분이 될 수 있었다.
현재로선 이지스 사태가 소강상태에 접어든 것으로 보이지만, 앞으로 이 같은 사례들이 더욱 많아질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단 평가다.
이번에 선임된 김성주 이사장이 과거 국민연금 이사장으로 재직할 당시(2017~2020년)엔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하는 방식이 예전과 달리 상당히 공격적으로 변모했다. 2018년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이후 국민연금은 '수탁자 책임'이란 명분을 앞세우기 시작했고, 기업의 지배구조 및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기 시작했다.
김 이사장이 기금운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성향은 아니라고는 한다. 다만 국회의원 출마를 이유로 국민연금을 떠났던 인사가 이재명 정부의 첫 국민연금 이사장으로 선임된 것은 현실 인식이 대통령을 비롯한 금융당국의 수장들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지나칠 수 없다.
김성주 이사장이 과거에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김 이사장과 이찬진 현 금융감독원장(당시 제일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은 함께 기금운용위원회에 몸담고 있었다. 2019년 기금운용위원회는 한진그룹 총수였던 고(故)조양호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에 반대표를 행사했고, 실제로 이사 선임을 저지하는 결과를 이끌어 냈다. 이는 국민연금의 의중이 기업 경영과 총수의 거취에 영향을 미친 장면으로 기록됐다.
이찬진 금감원장이 취임한 이후 금융당국의 기업을 향한 칼날은 점차 날카로워지고 있다. 과거 기금운용위원으로 재직하던 당시부터 일부 사모펀드와 대기업에 대한 공세를 주장했던 이 원장은 이젠 국민연금이 직접 금융지주에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방안을 언급하고 있다. 사실 국민연금이 기업에 이사를 추천하는 것에 대한 논의는 이미 수년 전부터 진행됐다. 하지만 인력풀을 구성하는데 분명한 한계가 있었고 또 '연금 사회주의' 논란에 불을 지필 수 있단 이유로 수면 위로 등장하진 않았다.
자본시장과 재계에 영향력을 넓히려는 금융당국의 수장과 현 정부의 어젠다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국민연금의 수장이 한 몸이 돼 움직이는 모습은 앞으로 국민연금이 노골적으로 존재감을 더 드러낼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 해가 다르게 몸집이 커지는 국민연금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모습, 그리고 국민연금이 좌지우지하는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현실이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Invest 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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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12월 21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