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사임'으로 버틴 강호동 농협중앙회장…국회 2차 개혁 입법 '속도'
입력 26.01.20 07:00
인사 구조는 그대로
여당 주도 농협개혁법 눈앞
2차 개혁 입법 가능성도
  •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15년 만에 내놓은 혁신안이 국회에선 사실상 '시간 벌기'로 평가받고 있다. 겸직 사임과 핵심 임원 동반 사퇴라는 메시지를 던졌지만, 국회가 문제 삼아 온 선거–인사–권력의 연결 구조에는 손대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회는 이미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안의 본회의 통과를 전제로 다음 수순을 논의하고 있다. 해당 혁신안이 오히려 2차 농협개혁법을 앞당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강 회장은 지난 13일 농업신문사 사장을 비롯해 겸직 임원 자리를 내려놓고 공개 사과에 나섰다. 동시에 지준섭 전무이사(부회장)와 여영현 상호금융대표이사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농협 내부에선 "책임을 졌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국회의 시선은 달랐다.

    한 국회 관계자는 "문제가 된 인사와 겸직을 되돌리는 것은 혁신이 아니라 사후 수습"이라며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 자체를 바꾸는 게 혁신"이라고 말했다. 인물 교체가 아니라 인물을 만들어내는 구조가 문제라는 얘기다.

    다른 국회 관계자는 "이번에 자리에서 물러난 지준섭 전무이사와 여영현 대표이사의 경우 어차피 올해 3월이 임기 종료라 곧 물러날 예정이었다"라며 "이제껏 특혜는 다 누리고, 나갈 시기가 돼서 나가는 것을 개혁이나 혁신으로 보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국회 논의와 맞물려 농림축산식품부는 중앙회 운영과 관련된 특정감사 및 조사에서 농협중앙회가 가진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농식품부는 임원 인사 과정의 내부통제 미흡, 겸직·출장비 집행의 불투명성, 반복되는 금융사고를 예방할 충분한 내부 통제 장치 부재 등을 구조적 결함으로 꼽았다. 

    이런 문제제기는 단순한 위법 여부를 넘어서 조직 전반의 리스크 관리체계가 취약하다는 판단에 기반한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이 같은 정부 차원의 문제제기는 국회 논의에 영향을 미치며 '혁신안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입법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평가다. 농식품부가 기관 차원에서 중대한 권한 분산과 투명성 강화의 실효성을 문제로 제기한 만큼, 내부 TF(태스크포스) 같은 자구적 기구만으로는 근본적 제도 보완에 한계가 있다는 평가도 국회 안팎에서 나왔다.

    국회가 파고드는 지점은 조합장 선거 → 중앙회장 선거 → 임원 인사로 이어지는 구조다. 이 고리가 유지되는 한, 특정 회장의 도덕성이나 결단과 무관하게 비슷한 논란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다.

    지난 19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를 통과한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안은 이 구조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조합장 선출 방식 일원화, 비상임조합장 연임 제한, 외부 회계감사 강화는 모두 선거 권력의 집중을 분산하기 위한 장치다. 여당 주도로 상임위를 통과한 만큼, 법사위와 본회의 문턱을 넘을 가능성도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나아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2차 개혁안의 필요성이 커졌다는 견해도 나온다. 이번에 사임한 지준섭·여영현 두 인사는 모두 강 회장 취임 이후 인사추천위원회와 이사회 절차를 거쳐 선임됐다. 절차적 하자는 없었다. 그럼에도 국회가 문제 삼는 이유는 절차의 독립성 때문이다.

    강호동 회장은 외부 전문가 중심의 '농협개혁위원회'를 구성해 제도 개선과 구조 개편을 논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상 중앙회장 체제 내부에서 구성·운영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국회 안팎의 시선은 회의적이다. 인사추천위원회, 이사회와 마찬가지로 명목상의 구조가 아니라 실질 권한을 쥔 경로를 건드리지 못하면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지적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문제가 된 인사 구조를 만든 주체가 다시 위원회를 꾸려 해법을 내놓는 방식"이라며 "권고 수준을 넘기 어렵고, 결국 입법을 통한 권한 분산·절차 독립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농식품부가 반복적으로 지적한 내부통제의 취약성을 위원회가 제어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나온다.

    이번 농협개혁법 논의의 선봉에 선 윤준병 의원은 1차 개정안 상임위 통과 이후, "농림축산식품부가 진행 중인 특정감사 결과를 토대로 농협중앙회의 지배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2차 농협 개혁에도 나서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이는 농협 내부 자율 개선만으로는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인식이 국회 주류에 존재함을 드러낸다.

    실제로 국회 내부에서는 2차 입법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국회 농해수위 의원실 한 관계자는 "1차 개정안이 상임위를 통과했는데, 이 밖에도 현재 여당을 중심으로 복수의 의원들이 추가 법안을 발의했거나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라며 "(본 의원실에서도) 선거제 개혁과 감사 기관 설치 등과 관련해 추가 입법안을 준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현행법에는 선거 보은 인사를 금지하는 규정이 존재하지만, 비공식 캠프 참여자를 법적으로 특정할 수 없어 사실상 적용이 어려운 실정이다. 자문, 조언, 조직 관리 같은 역할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인사추천위원회와 이사회가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책임을 분산시키는 완충 장치로 작동해 왔다는 평가다.

    농협중앙회장은 법적으로 비상근 명예직에 가깝다. 그러나 전무이사와 상호금융대표는 각각 중앙회 인사와 조합장 네트워크의 핵심 허브다. 이 두 자리를 통해 인사와 권력이 확산되는 구조에서는, 회장이 직접 지시하지 않더라도 영향력이 작동할 수밖에 없다는 게 국회의 판단이다.

    다른 국회 관계자는 "이사회가 전임 회장 체제에서 구성돼 있다고 해도, 인사와 안건은 이사회 이전 단계에서 이미 정리된다"며 "이사회 견제에 기대를 거는 건 현실을 모르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국회에선 이번 혁신안을 두고 "호구책"이라는 냉소적인 평가까지 나온다. 당장의 여론을 관리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농식품부의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자율 TF만으로 구조를 바꾸기엔 한계가 있고, 입법이라는 더 큰 흐름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국회에선 농협개혁법이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캠프 인원의 법적 정의 ▲임원 결격사유 강화 ▲인사추천위원회 독립성 법제화 등을 담은 2차 농협개혁법 논의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제 농협 혁신의 무게중심은 이미 중앙회가 아니라 국회로 이동했다. 정치권에선 혁신의 성패는 회장의 결단이 아니라, 국회를 통과할 수 있는 구조 개편인지 여부란 생각이다.

    한 국회 관계자는 "결국 농식품부에서 지적한 문제가 재발되지 않도록 국회 차원의 제도 개선 작업이 병행될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