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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온 '빅딜(Big Deal)' 가능성이 또 시장에 오르내리고 있다. 올 들어 접한 버전만 세 종류 이상인데, 구조나 방식에 일부 차이가 있을 뿐 대체로 과거 버전의 재탕, 삼탕이다. 관련 설(說)은 햇수로 4년째 반복되고 있다.
1. 그간 업계에서 크게 회자한 설 중 하나는 현대차그룹과의 빅딜 논의다. 현대차그룹은 수년간 SK온 최대 고객사였다. 지금도 미국 현지 JV 파트너십부터 2조원 규모 채무까지 양사 이해관계가 촘촘히 얽혀 있다. 2년 전 실제로 SK그룹과 현대차그룹 고위 관계자들이 물밑 접촉을 가지기도 했다.
SK온이 미국 JV 지분을 현대차그룹에 넘기는 정도면 나름 현실적이라는 평도 뒤따랐다. 지난 연말 SK온이 중국과 북미 지역부터 JV 청산 작업에 돌입했을 때에도 이런 관측이 재부상 했다. 그러나 지금 와서는 성사되지 않아 오히려 다행이라는 반응도 적지 않다.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SK온에서 현대차그룹 물량을 빼면 가동률이 크게 감소하게 된다. JV 지분을 넘겨 현대차그룹이 내재화하게 두면 나머지 공장들은 어떡하나"라며 "배터리가 비싼 게 문제지 핵심 밸류체인도 아닌데 완성차 기업이 내재화할 이유가 없다. 시장 경쟁으로 최적 기술이 판명날 때까지 복수 벤더사를 거느리는 게 사업적으로도 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2. 삼성도 빅딜설의 단골이다. 비공식적으로 삼성그룹과의 빅딜 논의가 검토된 적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삼성SDI가 삼성디스플레이 지분을 매각해 10조원 이상 현금을 쥐게 된다는 전망과 함께 관련 설에 또 살이 붙기 시작했다.
6년전 완성차 산업이 전기차로 일대 전환에 나설 때 삼성SDI가 국내 셀 3사 중 가장 신중하고 보수적으로 수주전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3사 중 유일하게 현대차그룹과 유의미한 공급 계약을 맺지 못하기도 했고, 미국 현지 증설 전략도 가장 늦었다.
SK온과 합병해 고객사풀과 생산능력(Capacity)을 공유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구상이 양사 빅딜 논의의 주요 골자였다. 그러나 가능성 낮은 시나리오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많았다. 삼성SDI 역시 캐파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 SK그룹이 어떤 제안을 하더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3. 나머지 하나는 SK하이닉스가 SK온을 인수하는 방안이다.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삼성전자를 따돌리고, SK그룹이 리밸런싱(사업 조정) 출구전략으로 인공지능(AI)을 지목하던 당시 실제로 이런 논의까지 잠시 검토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얼마 안 가 SK엔무브와의 합병안이 그 자리를 대신했고, 실제로는 모회사 SK이노베이션과 SK E&S가 합병하게 됐다. SK엔무브와의 합병은 그 이듬해 이뤄졌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전기차 배터리를 '정해진 미래'로 보고 속도전을 낸 건 그룹 수뇌부인데, 여기서 발생하는 부담을 SK하이닉스 수익성으로 막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실질 시너지도 없다"라며 "개정 상법 때문에도 힘들 것이고, 지금 추진하고 있는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과도 충돌하는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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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입장에선 철마다 돌아오는 이런 설들이 망령처럼 느껴질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3월 중순 이용욱 SK온 사장이 사내 팀장들과의 타운홀 미팅에서 "매각 관련 풍문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왜 이런 얘기들이 매년 되풀이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개별 설들이 구체성 떨어지고 개연성도 부족해 보이지만 전체 산업이나 국가 경제 차원에서는 꼭 필요한 논의일 수 있다.
국내 배터리 산업의 주축은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3사다. 2020년부터 작년까지 GM과 포드, 스텔란티스까지 미국 완성차 3사를 중심으로 현대차그룹과 유럽 독일, 일본 완성차 기업들로부터 대규모 수주를 쓸어담으며 북미 지역에 600GWh 규모 캐파를 구축했다.
수백조원 규모의 발주를 쏟아내던 고객사들은 지금 전기차 시장에서 점진적 철수를 준비하는 상태로 파악된다. 물론 환경 보조금이나 탄소배출 규제 등 전방 정책이 가장 큰 변수로 작용했다. 그러나 주행거리나 에너지 밀도 등 성능을 내세워 물량 경쟁에 나섰던 기존 전략이 더 직접적인 패인으로 꼽힌다. 전방 마중물 정책들이 되살아나더라도 최소한 3원계 리튬이온배터리를 고집하던 과거로 회귀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방 고객사들이 철수한 시장에 배터리 3사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구도가 된 셈이다. 심지어 지금도 캐파는 늘어나고 있다.
날아간 수주를 AI 데이터센터용 에너지저장장치(ESS) 프로젝트로 메우고, 리튬인산철(LFP) 라인으로 캐파 전환에도 속도를 내고는 있다. 그러나 ESS 시장 규모는 현재 보유 캐파를 채우기에 부족하다. LFP 전환에는 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당장 적자를 감당하기도 힘든데, 가동률이 떨어지는 일부 공장 자산에 대해선 손상처리 시한도 다가오고 있다.
햇수로 4년이나 군불을 땠으면 이제는 구조조정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가 됐다.
컨설팅펌 한 관계자는 "원재료 비중이 절반 이상에, 좋을 때도 겨우 한 자릿수 마진을 남기는 산업에서 3사가 버티기에 돌입하면 모두가 피를 볼 수밖에 없다"라며 "이전 정부 당시에도 산업 합리화 정책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있었으니, 지금도 당국이 이를 모르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시간이 필요할 뿐 ESS 시장도 갈수록 커질 테고 배터리가 필요한 산업군도 점점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많다. 그러나 3사 모두 당장 전기차 구멍을 메워야 하는 입장이라 유망한 ESS에서도 또 저가 수주에 나설 수밖에 없는 형편으로 전해진다.
거론되는 설들이 다소 위험해 보이고, 동의하기 힘든 구석도 있지만, 3개사를 2개사로 줄여야 한다는 문제의식에는 동의하는 목소리가 많다. 또 등장한 SK온 빅딜설이 수뇌부 일각의 쪽대본에 그치지 않고 진지하게 논의될 필요는 있다는 얘기다.
입력 2026.04.20 07:00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6년 04월 17일 15:13 게재
취재노트
현대차·삼성·하이닉스까지 4년째 시나리오 반복
개연성 떨어져 보여도 왜 낭설 반복되냐가 중요
고객사 전략은 축소, 철수 아니면 가성비 LFP로
바뀐 시장, 3사만 덩그러니…재편 논의 필요한 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