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新星) 사라진 현대차그룹…장재훈 부회장 독주 체재 굳어졌다
입력 2026.05.11 07:00

취재노트

그룹 내 유일한 부회장, 대내외 독보적 존재감

제2의 장재훈, 3~4인자 안보이는 현대차그룹

  • 현대차그룹은 우리나라 재계에서 부회장단이 가장 탄탄한 그룹 중 하나였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현업에서 활약하던 시절엔 가신(家臣)으로 불리는 10명 내외의 부회장들이 존재했고, 각 계열사, 각 부문별로 이름만 들어도 대표성과 상징성을 띄는 인물들이 즐비했다.

    오너 이하 개별 사업을 책임지는 인사들이 병렬로 늘어섰고, 전문경영인 예하 상하관계가 분명한 조직의 위계는 확고한 신상필벌의 원칙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현대차의 정기인사는 '뜨는 별'과 '지는 별'로 늘 화제가 됐었다.

    이 같은 문화는 현대차그룹의 사업과 조직을 경직시킨 원인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그룹이 빠르게 글로벌 시장에서 자리잡을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회장의 신임을 받은 듯 하지만 언제, 어떤 방식으로 짐을 싸게될지 모르는 임원들의 부담은 각 계열사와 사업부가 보다 나은 성과를 내기 위한 치열한 경쟁으로 이어졌다.

    정의선 회장이 그룹의 구심점으로 자리잡은지 6년. 현대차그룹엔 신성(新星)이 사라졌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아끼던 인사들은 이제 남아있지 않고, 정의선 회장이 현재에 오르기까지 보좌했던 핵심 인들은 여러 이유로 존재감이 희미해졌다. 

    아버지 세대와 정 회장 리더십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여기서 시작된다. 정 회장은 가신그룹이 아닌, 단 한 명의 '믿을맨'에게 전권(全權)에 준하는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조직을 장악했다.

    현재 정의선 회장 곁에는 단 한 명, 장재훈 부회장이 있다. 현대차그룹 일가 사위인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을 제외하고 그룹에서 부회장 직함을 유지한 인물이 장재훈 부회장이다. 장 부회장은 정의선 회장 체제가 들어선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 부회장 승진자로 기록되고 있다. 장 부회장이 2018년 말 부사장에 승진한 이후, 그룹 내 유일무이한 부회장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7년에 불과하다.

    정의선 회장, 장재훈 부회장의 투톱 체제에서 현대차그룹이 눈에 띄게 성장한 건 사실이다. 판매와 실적, 기업가치 등 모든 면에서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이 확연하다. 최근엔 미국발(發) 관세 위기를 넘기면서 글로벌 3대 완성차 메이커의 지위를 굳히게 됐다.

    잔치와 위기를 반복하면서 정의선 회장은 아직 마침표를 찍지못한 승계 스토리를 매끄럽게 써내려갈 수 있었다. 이 모든 과정엔 회장을 최측근에서 보필한 장 부회장이 있었다. 부회장 직함이 부여된 지난해부턴 명실상부한 2인자로 자리잡으며, 대내외적으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너 경영인을 제외하곤 정·재계 공식석상에 가장 많이 노출되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문경영인 중 하나로 언급된다.

    과거 현대차그룹엔 장 부회장에 비견할 만한, 또 그 보다 이름값이 큰 인사들이 많았다. 그룹은 1~3 기획조정실을 운영하며 핵심 인사들의 경쟁 구도를 마련했고 재무, 전략, 연구개발, 신사업 등 각 분야의 인사들을 균형감 있게 배치했다. 

    이런 균형과 견제장치가 사라진건 장 부회장이 초고속 승진 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즈음부터다. 기획조정 1~3실장이 모두 물러난 이후엔 기획조정역할(담당)은 장재훈 부회장이 도맡았다. 기획조정역할은 지난해 말 그룹의 정통 재무라인으로 분류되는 서강현 사장에게 분담했다. 권력의 집중과 함께 자연스럽게 그룹에선 3인자, 4인자 또는 대표성을 갖는 인물이 흐릿해졌다. 현재는 장 부회장을 리더십을 대체할 후계(?) 구도가 보이지 않는 형국이 됐다.

    지난해엔 그룹의 리더십에 미묘한 기류가 포착됐다. 후임자도 없이 돌연 현대차를 떠난 송창현 전 사장(AVP 본부장)은 "레거시 산업과의 충돌"을 언급했다. 송 전 사장 역시 정의선 회장이 삼고초려해 영입한 인재였던만큼 파장이 상당히 컸다. 

    송 전 사장이 장 부회장을 비롯해 깊게 뿌리 내린 인사들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지 못했단 점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해당 사건은 오너와 장 부회장이 진화에 나서며 일단락 됐지만, 앞으로도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특히 절대권력이 희미해지고, 오너십이 약해지는 시점엔 더욱 예측하기 어려운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

    사업은 물론이고 인사, 전략, 기획, 신사업 등 다방면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 존재한다는 건 오너에겐 양날의 칼이다. 삼성그룹만 보더라도 문고리 핵심 인사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 안팎으로 잡음이 일었다. 결과적으론 그의 퇴진과 함께 논란은 일단락 했고, 때마침 찾아온 호실적에 묻혀버린 과거가 돼버렸지만, 삼성 인재풀의 한계와 몇몇에 의존한 오너의 의사결정 체제를 여실히 노출하는 계기로 기록됐다.

    현대차그룹이 지금까지 잘 달려온 것과는 달리,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거버넌스가 유지될 수 있을까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그룹엔 너무나도 많은 숙제가 쌓여있다.

    길게는 상속과 승계를 마무리 지어야하고, 이 과정에선 수면 위에선 보이지 않는 복잡하고 민감한 이해관계를 풀어내야 한다. 대미(對美) 투자, 사업비만 9조원에 달하는 새만금 사업, SDV 전환의 가속, 전세계 투자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성공, 국내외에서 점차 거세지는 노조의 압박 등 동시다발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넘친다. 현재로선 이 모든 과제가 장 부회장의 몫이다. 

    1964년생인 장 부회장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1964년 전후로 구성된 대표이사, 임원진들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이 회사를 떠나도 여전히 자리를 지킬 정의선 회장에게 어떤 용병술 카드가 남아있을진 아무도 모른다. 벌써부터 한 전문경영인의 빈자리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은 아마 현대차의 숨겨진 가장 큰 리스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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