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더 떠안을까"…한화·DL, 여천NCC 재편 눈치싸움
입력 2026.05.27 07:00

산은·채권단, 여천NCC 실사 중…중동 변수 반영 재무추정

한화솔루션·DL케미칼, PE 다운스트림 사업부 이관 검토

통합법인 3년 상환유예 구조 놓고 자산·부채 이전 셈법 복잡

울산은 샤힌·대한유화 변수에 관망…여천NCC가 다음 트랙

  • 국내 석유화학 구조조정의 다음 무대로 꼽히는 여천NCC 재편 작업이 단순 설비 통폐합을 넘어 '부채 재편' 국면으로 번지고 있다. 통합법인에 어떤 다운스트림 자산을, 어느 정도 수준의 차입금을 넘길지를 두고 주요 참여사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다.

    특히 산업은행이 통합법인에 대해 사실상 3년간 차입금 상환 부담을 유예하는 금융지원 구조를 검토하면서, 업계에서는 "누가 어떤 부채를 얼마나 떠안을 것인가"가 이번 구조조정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여천NCC의 재무 부담은 이미 한계 수준에 근접했다는 평가다. 여천NCC 총차입금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1조9130억원, 부채비율은 345.8%까지 상승했다. 2022년 이후 4년 연속 영업적자가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해에는 주주사 유상증자 2000억원과 추가 대여금 3000억원까지 동원하며 유동성을 방어한 상태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산업은행과 채권단은 최근 여천NCC 구조조정 관련 실사를 진행하며 재무추정 작업을 다시 진행하고 있다. 기존 NCC 설비 통합뿐 아니라 각사가 어떤 다운스트림 자산과 부채를 얼마나 함께 넘길지를 전제로 운영자금, 시설투자(CAPEX), 대주주 출연 규모 등을 재산정하는 단계다. 

    현재 논의되는 구조는 여천NCC를 중심으로 롯데케미칼 여수 NCC 및 다운스트림(PE·PP·PVC 등 합성수지) 자산 일부를 묶어 3사 통합법인을 설립하는 방향이다. 이후 한화솔루션·DL케미칼·롯데케미칼이 최종적으로는 지분율을 각기 33.3%씩 동일하게 조정할 예정이다. 

  • (그래픽=윤수민 기자)

    문제는 각사 현물출자 비율이다. 구조상 각사가 유사한 수준의 지분율을 확보하려면 출자 자산 가치 역시 일정 수준 균형을 맞춰야 한다. DL그룹이 다운스트림 자산과 차입금을 대거 넘기면, 한화그룹 측은 현금 추가 납입 등을 통해 지분가치를 맞춰야 할 가능성이 생긴다.

    실제 대산 1호 구조조정 사례에서도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은 현물출자 자산 가치 차이를 맞추기 위해 추가 현금 투입 과정을 거쳤다. 기존 지분 구조는 사실상 4대6 수준이었지만, 최종적으로 통합법인 지분율을 5대5로 맞추기 위해 HD현대케미칼 측이 현금을 추가 투입하는 구조였다.

    여천NCC는 상황이 더 복잡하다. 단순 양자 통합이 아니라 3개 회사가 동시에 얽혀 있는 데다, NCC뿐 아니라 폴리에틸렌(PE) 다운스트림 사업부와 관련 차입금까지 함께 이관하는 시나리오가 논의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의 셈법 차이가 적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DL그룹 측은 다운스트림과 부채까지 적극 이관해 재무부담을 최대한 덜어내는 방향에 무게를 두는 반면, 한화 측은 상대적으로 자산 구성과 출자 구조에 보다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한쪽에서 NCC를 넘기는 김에 다운스트림 자산과 차입금까지 같이 넣겠다고 하면, 상대방 입장에서는 지분율을 맞추기 위해 현금을 추가로 태워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며 "결국 각사가 자기한테 가장 유리한 자산과 부채 조합을 짜려 하다 보니 협상이 길어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실제 통합법인에 다운스트림 사업부를 함께 넘길 경우 단순 설비 감축 이상의 재무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핵심은 산업은행 금융지원 구조다. 앞서 대산 1호 구조조정에서는 산업은행이 신규 자금 공급과 함께 사실상 3년간 차입금 상환 부담을 유예하는 구조를 제공했다. 시장에서는 여천NCC에도 유사한 틀이 적용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이 경우 각사는 다운스트림 자산뿐 아니라 관련 차입금까지 통합법인에 함께 넘기는 게 유리해질 수 있다. 개별 회사 차입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데다, 통합법인을 연결 자회사 대신 지분법 대상으로 처리할 경우 장부상 연결 부채를 덜어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부채를 통합법인으로 넘긴 뒤 지분 50%만 보유하게 되면 연결 기준 부담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드는 효과가 생긴다"며 "겉으로는 NCC 구조조정이지만 실제론 부채와 현금흐름을 어디로 넘길 것인가의 문제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산업은행 내부에서도 단순 설비 감축 이상의 구조조정 그림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단순 NCC 셧다운만으로는 재무 개선 효과가 제한적인 만큼 다운스트림 자산과 부채, 현금흐름까지 함께 묶어 통합법인 단위로 재편해야 실질적인 정상화가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문제는 최근 중동 전쟁 이후 업황이 일시 반등한 점이 협상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원래처럼 업황이 회생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면 구조조정 속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이해관계가 모일 수 있었겠지만, 최근에는 래깅 효과로 수익성이 일부 회복되면서 각사 고민도 함께 커졌다.

    실제 주요 NCC 업체들은 올해 1분기 예상보다 양호한 실적을 기록했다. 중동 전쟁 이전 저가 나프타 투입분이 전쟁 이후 급등한 제품 가격에 반영되며 단기 래깅(원재료 가격 변동이 실적에 시차를 두고 반영) 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다만 석화업계에서는 이를 구조적 회복으로 보긴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중국발 공급 과잉과 중동 신규 증설 부담이 여전한 데다 향후 유가 안정 시 역래깅 가능성도 감안해야 한다.

    울산 지역 구조조정은 여전히 속도 조절 분위기가 강하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사실상 여천NCC 재편이 국내 석유화학 구조조정의 '다음 트랙'으로 먼저 진행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울산은 SK지오센트릭·대한유화·에쓰오일 간 NCC 통합 논의 자체는 유지되고 있지만, 이해관계가 여수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평가다. 특히 대한유화가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는 데다, 에쓰오일 샤힌 프로젝트 가동 이후 실제 시장 영향을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규 고효율 설비와 기존 NCC 감축 문제를 동시에 조율해야 하는 까닭이다. 

    최근 시장에서 불거졌던 SK 화학사업 통매각설 역시 이런 불확실성과 구조조정 지연 분위기가 반영된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는 울산 NCC 통합법인 논의 과정에서 일부 현물출자 구조가 와전된 성격에 가까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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