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 앞두고…투자업계 '기대 반 우려 반'
입력 25.06.02 07:00
PEF·VC 등 자본시장, 대선 후보 공약에 촉각
'유동성 확대' 기대 있지만 규제 강화 우려도
긴장한 재계… 자문사들은 일감 늘어날까 기대
  • 대선 후보들이 내놓은 자본시장 관련 공약을 두고 사모펀드(PEF), VC(벤처펀드) 등 투자업계에서는 정책 변화에 따른 기대와 부담이 교차하고 있다.

    한동안 시장 불확실성이 계속된 가운데, 새 정권 초기에는 증시 부양책 등의 효과로 시장 분위기가 나아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 모두 국내 증시 부양 의지를 내비쳤다. 양측의 세부 공약에는 차이가 있지만, 1500만 명에 달하는 소액 개인투자자들의 마음을 잡기 위한 방안은 대동소이하다는 평가다.

    시장 관계자들은 진보 정권에서는 유동성이 확대되는 경향이 있는 점을 감안해, ‘돈이 풀리는’ 효과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불확실성 속에서 기업들은 움직이지 않고, PE들은 오래된 포트폴리오 정리에 나서야 하는데 바이어(매수자)가 없어 시장이 정체됐던 상황”이라며 “정권 불확실성이 사라지면 시장 플레이어들도 조금씩 움직일 것이고, 아무래도 새 정권 아래에서 시장에 돈이 풀리면 소비 진작 등의 효과로 PEF들의 포트폴리오 실적 개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PEF 자체에 대한 ‘칼날’은 계속될 것이란 관측도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후보의 공약에는 PEF 및 투자조합 유한책임투자자(LP)에 대한 적격성 심사 강도를 높이겠다는 방침이 포함돼 있다. 사모펀드의 ‘먹튀’를 방지하겠다는 의도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PEF 대상 검사를 연 5개로 확대하겠다고 밝히는 등, 당국의 부정적 인식이 커진 분위기가 감지되면서 PEF 업계는 숨죽이고 있다.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이러한 기조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동안 시장이 얼어붙었던 벤처업계도 후보들의 공약에 주목하고 있다.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LP)들은 회수가 지연되면서 벤처 출자를 줄였고, 거래소의 기업공개(IPO) 허들이 높아지면서 벤처 투자 시장은 정체기를 겪어왔다.

    올해 들어 LP들이 벤처펀드 출자를 다수 재개하며 분위기가 개선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대부분의 LP들이 공모 또는 경쟁 입찰 방식(콘테스트 형식)으로 출자에 나서면서 자금 조달에서도 대형사와 중소형사 간 뚜렷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됐다는 평가다. 이런 가운데 대선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에 벤처투자 활성화가 포함되면서 실제 시행 여부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재명 후보의 공약집에는 ‘퇴직연금의 벤처투자 허용’과 ‘연기금 투자풀의 벤처투자 확대’가 포함돼 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도 지난 22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선대위 회의에서 퇴직연금의 벤처투자 허용을 약속한 바 있다.

    퇴직연금의 벤처투자가 허용된다면 대규모 자금이 벤처기업에 투자될 수 있다.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퇴직연금 적립금은 2024년 말 기준으로 431조7000억원에 달한다. 퇴직연금이 워낙 큰 시장이다 보니, 그동안 VC 업계는 정부에 꾸준히 벤처투자 허용을 요구해왔다.

    한 VC 업계 관계자는 “만약 퇴직연금의 벤처투자가 허용된다면, 특히 자금력이 있는 대형 VC들은 상당한 자금 유입 기회가 열리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며 “벤처투자 활성화 공약은 진보·보수 후보 모두 담고 있어 일단은 기대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재계의 최대 화두였던 주주 충실 의무 도입을 위한 상법 개정에 대해선 이재명 후보가 재추진 의지를 밝힌 반면, 김문수 후보는 정부 측 수정안을 지지하는 등 뚜렷한 입장 차를 보였다. 이 후보는 상법상 주주 충실 의무 도입 등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일반 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겠다고 밝혔으며, 김 후보는 비상장 중소기업까지 포함하는 상법 개정이 아닌, 상장사에 한해 주주 보호 의무를 대폭 강화하고 사외이사 전문성을 제고해 기업 거버넌스 개선에 나서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상법 개정 등 신설 규제가 생기면 기업과 투자자 등이 대응에 나서며 자문사를 찾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에 따라 회계법인, 법무법인 등 자문 업계는 규제 대응 관련 일감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다만 한편으로는 기업들이 '몸사리기'에 들어가면서 M&A(인수합병)나 투자 등 활발한 시장 활동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 대형 법무법인 관계자는 "상법 개정이 이뤄지면 새로운 법이나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기업들의 문의가 많을 것으로 본다"며 "후보들의 공약을 살펴보면 M&A 등 거래에서 더욱 꼼꼼하게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이 생기기 때문에, 검토해야 할 항목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지정감사제가 신설됐을 때도 그랬고, 통상 진보 정권에서는 여러 규제 강화가 생기면서 회계펌 실적이 감사나 세무(Tax) 등 전반적으로 좋아지는 추세를 보였다"며 "상반기 딜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걱정이지만, 하반기 시장 분위기가 나아지면 딜들도 재개될 것으로 보고, 미리 대비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