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소송 당하면 파산할 수도"…기업들 사외이사 모시기 더 어려워진다
입력 25.06.12 07:00
취재노트
이사의 충실 의무를 회사에서 주주까지
상법개정안 국회 통과 가시권
권익 침해라고 판단시 이사 대상 소송 남발 가능성
사외이사 욕심냈다가 수억원 소송 비용 감당할 수도
"가뜩이나 영입 어려운 사외이사, 앞으론 더 모시기 어려울 듯"
  • 새정부가 출범하자 지난 정부에선 무산됐던 상법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가시화했다. 재추진되는 상법개정안엔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 그리고 대주주의 의결권이 제한되는 집중투표제 도입을 의무화 하는 내용이 담길 전망이다.

    대주주에 대한 권력 집중을 감시하고, 소액주주를 보호하겠단 취지의 상법개정안은 그동안 재계와 기존 여당의 반발로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개정안 자체가 이재명 대통령의 제1호 공약이었던만큼 빠른 시일 내에 법안 통과가 예상되는데 해당 법안은 공포 즉시 실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에서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은 역시 이사의 충실 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이사의 개념은 사내이사, 사외이사를 모두 포함한 이사회 구성원을 일컫는다. 이사회의 활동이 주주 권익에 침해했다고 판단할 경우 주주들은 주주대표 소송을 통해 이사를 고발할 수 있게 된다.

    재계에선 이미 상법 개정안 통과를 염두에 두고 전략 마련에 한창이다. 특히 상장회사들은 전자투표제 도입을 비롯해 집중투표제의 실익, 어떤 이사들을 어떤 방식으로 선임해야하는지까지 구체적인 전략 수립에 집중하고 있다.

    당장 내년 주주총회부터 사외이사를 선임해야 하는 기업들은 더욱 고민이 깊다. 가뜩이나 행동주의펀드 또는 일반 소액주주들의 소송이 빗발치는 상황에서 상법개정안이 통과하면 외부 인사를 사외이사로 모시는 일이 더욱 어려워 질 것이란 고민도 토로한다.

    국내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기업들의 가장 큰 고민은 현재도 모시기 어려운 사외이사들을 앞으론 어떻게 영입해야 하는지 문제이다"며 "주주들의 이익이 침해당했단 것을 정량적으로 증명하긴 어려운 부분이지만, 이를 문제시 삼고 이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남발하면 이사의 경영활동에 상당한 제약이 따를 것이 분명하고, 이사 개인적으로도 소송 비용 등에 부담을 느껴 보수적인 경영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상법 이사의 충실의무를 다하지 않은 인사가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이 형사 처벌을 받는 형식은 아니지만 이사회 구성원들이 충분히 압박을 받을 수 있단 의견엔 이견의 여지가 많지 않다.

    실제로 주주가 제기하는 주주대표 소송은 소송 비용을 회사가 대납할 순 없는 구조다. 즉 사내이사, 사외이사 개개인이 소송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데 승소 여부를 떠나 개인적으론 소송을 당한다는 것 자체가 이사회 구성원으로선 상당한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다.

    사실 대기업의 사외이사들의 경우엔 전관(前館) 출신 뿐 아니라, 외풍을 막아줄 정재계, 학계 인사들이 다수 포진해있다. 내로라하는 '재력가'가 아닌 이상 주주들이 남발하는 소송에 수년 동안 버티기 힘든 인사들이 대부분이란 의미이기도 하다.

    국내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사실 기업의 사외이사라는 자리가 명예직의 의미가 크다. 언제든 주주들로부터 소송을 당하고 뒷감당을 스스로 해야한다면 누가 이 자리에 오고 싶겠느냐"며 "가뜩이나 이사를 영입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에서 앞으론 더욱 어려워 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사모펀드(PEF) 업계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PEF 운용사 임원 및 실무진들은 경영권 또는 소수지분 보유한 포트폴리오 기업에 이사진으로 포함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PEF 운용사의 경영 철학에 맞는 경영진을 선임함과 동시에 이를 감시하기 위해 운용 인력을 이사진에 선임하는 경우가 많다. 

    상법개정안이 통과할 경우엔 PEF 임원 또는 실무진이 불특정 다수의 주주들로부터 언제든 소송을 당할 수 있는 리스크에 노출될 개연성이 크다. 일부 포트폴리오 기업의 주주 대표소송이 PEF 운용사 전반적인 평판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단 우려와 함께 향후 PEF 경영활동이 상당히 제약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