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투명한 지배구조 손보겠단 李…현대차, 순환출자 해소 등 구조개편 방안 골머리
입력 25.06.13 07:00
3년 연속 전세계 판매 3위 기록한 현대차
우호적 사업환경에 前 정부까지 구설없이 승승장구
기업 지배구조 손보겠단 이재명 정부
대기업 중 유일한 순환출자 기업 현대차는 안전할까
구조개편 해결책 제시할 컨트롤타워無 평가도
  • 현대차그룹은 재계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순환출자를 통해 오너가 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그룹 중 하나다. 현행법상 이미 형성돼 있는 순환출자고리를 끊어내야 하는 근거는 없지만,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손보겠단 기조를 내세운 이재명 정부 하에선 구조개편의 압박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단 평가가 나온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를 단순화하면 '현대모비스(21.9%)→현대차(34.5%)→기아(17.7%)→현대모비스'의 구조가 형성돼 있다. 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와 핵심 계열사인 현대차는 정몽구 명예회장이 각각 7.3%, 5.4%를 보유한 개인 최대주주이다. 정의선 회장이 보유한 현대모비스와 기아의 지분율은 각각 0.3%, 1.8% 수준에 불과하다. 

    사실상 정의선 회장은 추후 정몽구 명예회장의 현대모비스, 현대차 지분 승계를 통해 오너일가의 지배력을 유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분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수조원의 자금을 마련하는 것은 정의선 회장이 해결해야 할 또 다른 과제이다.

    정부는 지난 2014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 신규로 순환출자고리를 형성하는 것을 금지했다. 기존에 형성된 순환출자고리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위법이 아니다. 

    다만 정부는 기업이 자발적으로 해소하도록 끊임없이 유도해왔는데, 실제로 현대차그룹을 제외한 국내 대기업 대부분은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순환출자 문제를 해소했다. SK, LG, GS, CJ, LS, 두산, 롯데, 한진, HD현대 등은 이미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고 삼성그룹 역시 얽혀있는 지분을 정리해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끊어냈다.

    현대차그룹 역시 2018년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방안이 담긴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했으나 투자자들의 반발에 부딪혀 실패한 전례가 있다. 현대모비스의 분할과 합병, 그리고 현대글로비스를 활용한 방안이었는데, 해당 시도가 실패한 이후 8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뚜렷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다.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회장 체제로의 전환, 그리고 최근 수년간 우호적인 사업환경 속에서 빠르게 성장해왔다. 판매량 기준 전세계 3위 자리를 3년 연속 지키면서, 글로벌 완성차 시장에서의 위상 역시 눈에 띄게 달라졌다. 삼성그룹, SK그룹이 오너리스크 등으로 대외적인 공세에 시달릴 때도 현대차그룹과 정의선 회장은 사실상 무풍지대에서 사업을 이어갔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며 재계의 긴장도가 여느때보다 높아진 현재로선 현대차 역시 안심(?)할 수만은 없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코스피5000을 목표로 내건 이재명 대통령은 국내 주식의 저평가의 원인을 기업들의 지배구조에서 찾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작업중 하나로 상법 개정을 우선적으로 추진했고, 민주당은 5일 개정안을 다시 발의할 것을 공식화했다. 

    상법 개정안 자체가 현대차의 거버넌스 문제를 지적하는 내용은 아니다. 다만 대기업군 가운데 유일한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질 수 있단 점은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소수의 지분으로 과도하게 지배력을 확대하는 경제력 집중 우려를 해소하겠다"는 내용을 공약집에 명문화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의 순환출자고리는 언젠가는 반드시 끊어내야 할 과제지만, 이제껏 정치권과 재계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을뿐 아니라 그룹차원에서도 해결하기 위한 선제적인 움직임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며 "새정부가 기업 지배구조를 손보겠단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만큼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이 마땅한 해결책을 내놓긴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 정의선 회장이 정몽구 명예회장으로부터 지분을 오롯이 승계하는 작업, 이를 위한 재원마련 방안을 모색하는 것 그리고 순환출자 고리를 끊음과 동시에 지배구조를 단순화하는 작업 모두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돼야한다는 부담이 있다.

    그룹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중대한 과제인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책임지고 해결할만한 인력과 조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향후 방향성을 가늠하기 어려운 배경으로 꼽힌다.

    2018년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주도한 김걸 사장(기획조정실 실장)은 지난해까지도 거버넌스 문제 해결을 추진했으나 지난해 정몽구 재단 부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와 동시에 기획조정실을 비롯한 현대차그룹의 헤드쿼터 조직도 상당수 변화를 겪었다. 현재 그룹의 기획조정 업무는 장재훈 부회장이 '기획조정담당'이란 직책으로 맡고 있다. 그러나 장 부회장의 경우 세무·회계·법무·대관 등 거버넌스 개편에 필요한 실무적인 분야보단 사업분야에 더 집중해온 인사인 탓에, 현재로선 그룹 지배구조 개편 업무가 사실상 공백상태란 평가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