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교체 마친 골드만·JP·모건…한국서 빅3 존재감 회복할까
입력 25.06.18 07:00
House 동향
최근 모건스탠리 조상욱 대표 이탈 화제
작년엔 골드만·JP모건에서도 수장들 떠나
변화 필요해진 한국시장서 세대교체 속속
경쟁 강화로 '이름값' 되찾기 쉽지 않을 듯
  • 외국계 투자은행(IB) 업계에 세대교체 바람이 거세다. 골드만삭스를 시작으로 JP모건, 최근 모건스탠리까지 IB 부문 터줏대감들이 떠났고 새 인물들이 뒤를 이었다. 시대적 흐름에 따라 젊은 리더십으로 전열을 정비했지만 '이름값'을 되찾는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자본시장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고, 회계법인과의 경쟁에서 이길 방도를 찾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최근 IB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조상욱 모건스탠리 전 대표의 이탈이다. 조 전 대표는 2005년 모건스탠리에 합류한 후 2012년부터 한국 IB 부문을 이끌어 온 터줏대감이다. 그는 대기업과 IT·플랫폼 관련 거래에서 전문성을 드러내며 꾸준한 실적을 쌓아 왔는데 지난달 회사에 사의를 표했다. 조 전 대표의 이탈은 예상치 못한 이벤트로 받아 들여졌다.

    자연히 조상욱 전 대표의 이탈 배경에 대해 설왕설래가 오갔다. 모건스탠리가 아시아 지역 고위급 인력을 줄이는 과정과 내부 규제관리 언급이 나오기도 했다. 실질이 어떻든 거취를 둘러싼 부담이 커지자 스스로 용퇴하는 모습을 택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모건스탠리는 한국에서 아이디어와 전문성을 앞세운 정통 IB의 모습을 지켜왔다. 최근 수년간은 다소 부진했다. 조 전 대표는 코로나 팬데믹 당시 부진할 때도 글로벌에서 신임을 받았다. 그러나 기업들이 주춤하고 사모펀드(PEF)들이 지갑을 닫는 상황에선 성과를 내기 쉽지 않았다. 예전이면 충분히 됐었을 법한 거래가 무산되는 등 불운도 겹쳤다.

    한 IB 관계자는 "단기 실적을 부진으로 대표급 인사를 바꾸기 어렵고 실익도 크지 않다 보니 조 전 대표가 물러날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며 "조 전 대표 입장에선 최근 CJ제일제당 바이오사업 매각처럼 될 법한 거래가 무산되는 등 운이 나빴던 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달 모건스탠리는 조상욱 전 대표 후임으로 김세원 전무를 낙점했다. 김 신임 대표는 연세대학교 심리학과를 나와 UBS와 KB증권 등을 거쳤다. 2018년 크레디트스위스(현 UBS)에 합류했고, 2023년 모건스탠리로 이직해 IB 업무를 맡아 왔다. 스타일난다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역임했고, 크래프톤 상장 등 굵직한 거래에 관여한 이력이 있다.

    김세원 신임 대표는 1974년생으로 조상욱 전 대표(1968년생)와 아주 큰 격차가 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모건스탠리에서 20년간 중책을 맡은 조 대표가 물러났고, 그보다 젊은 인사가 올라왔기 때문에 '세대교체'로 인식되고 있다. IB 시장 내 중량급 인사가 씨가 마른 터라 모건스탠리가 외부 인사를 찾지 않고 발 빠르게 내부 승진을 결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다른 IB에서도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골드만삭스에선 작년 초 정형진 대표(1970년생)가 물러났다. 한동안 뾰족한 실적이 없었고, 정 전 대표가 글로벌 파트너 자리에 오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안재훈 SK바이오사이언스 부사장(1976년생)이 후임 IB 대표로 선임됐다. 안 대표는 2011~2021년 모건스탠리에서 근무했고, 2019년 MD에 오른 바 있다.

    JP모건에선 박태진 한국 회장(1961년생)이 작년을 끝으로 20여년 몸담은 회사를 떠났다. 2022년 MD로 승진하고 2024년 초 IB 총괄에 오른 조솔로 대표(1980년생)가 IB부문을 이끌고 있다. 조 대표는 ABN암로은행(2007~2014년), 도이치뱅크(2014~2018년)를 거쳐 2018년 JP모건에 합류했다.

    그간 한국 IB 시장에선 수뇌부의 변동이 많지 않았다. 대표급이 수십년간 쌓은 네트워크를 후배들이 따르기 어려웠다. 일부 인사는 정년 후에도 '계약직' 형태로 일을 도왔다. 그러나 부진이 장기화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선 인공지능(AI)과 업무 자동화, 일감 부족 등으로 전문가의 자리가 줄고 있다. 한국에선 기업과 PEF 경영진이 젊어지며 보다 젊은 IB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많아졌다. 글로벌 IB 본사 입장에서도 한국에 변화를 줄 필요성이 커졌다.

    글로벌 톱3 IB의 한국 수장이 40대~50대 초반으로 젊어지며 분위기 전환에 성공했다. JP모건은 올해 IB 실무진을 대거 영입하며 실적 기반을 다지고 있다. 안재훈 대표는 고객들을 직접 챙기는 등 일감 수주에 분주하다. JP모건과 골드만삭스는 올해 최대 M&A 거래 중 하나인 DIG에어가스 매각 자문사다. 김세원 대표도 의욕을 보이고 있는 만큼 존재감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세대교체만으로 모든 걱정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 

    내부 살림에 급급한 기업들은 IB가 필요한 크로스보더(국경간거래)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가끔 있는 거래에서도 IB를 찾지 않거나, 보수를 한참 낮춰서 주는 경우가 많다. PEF 역시 새 정부 들어 각종 규제가 눈앞으로 다가오며 조심스런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의욕만으로 일감을 찾기 쉽지 않다.

    대형 회계법인의 부상으로 자문 경쟁은 심화하고 있다. 주요 거래들은 국내서 이뤄지고 있고, 자문도 상대적으로 보수가 싼 회계법인에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IB는 난이도가 높은 거래에서만 고용되기 때문에 성공보수를 챙기기는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름값'보다 고객들의 고민을 보다 적극적으로 파악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 자문업계 관계자는 "크로스보더 M&A가 줄고 네트워크 중심의 ECM, DCM 영업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며 "기업들의 거래 역량이 내재화하고 비용 지출도 줄이려 하고 있어 IB들이 영업하기 힘든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