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기 시작한 금융지주 '인사 시계'...은행에 바랄 것 많은 정부 덕 볼까
입력 25.10.16 07:00
내년 신한·KB·우리 등 주요 금융지주 CEO 임기 만료
신한·BNK, 잇단 선임 절차 개시…연임 행보 본격화
국감 증인서 빠진 금융권 CEO들…기류 달라졌나
진옥동·임종룡, 정부 기조 맞추며 '연임 굳히기' 나서
  • 정권 교체 후 첫 금융지주 최고경영자(CEO) 인사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안정적 지배구조'를 명분으로 예년 대비 한두 달 가량 빠르게 '인사 시즌'이 시작된 가운데, 은행을 정책의 지렛대로 삼으려는 정부의 의중에 금융권이 촉각이 모아지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초기까지만 해도 '새 정책 기조에 맞춰 금융사 지배구조 역시 대거 쇄신되지 않겠느냐'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다만 국정감사를 기점으로 지금은 '변화'보다 '활용'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니겠느냔 해석도 나오고 있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은행금융지주, 3대 지방금융지주 CEO 중 절반을 넘는 4명의 임기가 내년 중 만료된다.내년 3월에는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 빈대인 BNK금융 회장의 임기가 만료되고, 내년 11월에는 양종희 KB금융 회장의 임기 만료가 예정돼 있다. 

    신한금융은 금융지주 중 가장 먼저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를 가동해 본격적인 경영승계 절차 작업을 시작했다. BNK금융 또한 추석 직전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를 개최해 상시 후보군을 대상으로 지원서 접수를 받고 있다.

    우리금융과 또한 이른 시일 내 회추위를 가동할 전망이다. 금감원은 지난 2023년 12월 발표한 '은행지주·은행 지배구조 모범관행'에서 금융지주 및 은행 최고경영자(CEO) 경영 승계 절차를 임기 만료 최소 3개월 전에 개시하도록 규정했다.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는 지주 회장들이 모두 초임이라는 '특수 상황'에도 불구, 일반적으로 정권 교체기에는 금융지주 회장들도 교체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이번 인사 시즌이 주목받고 있다. 금융지주는 사기업이지만 최대주주가 명확치 않고, 통화 및 재정정책의 핵심을 담당하기 때문에 통상 CEO 인선에는 정부의 '입김'이 미친다는 것이 통설인 까닭이다.

    실제로 현 정부 출범 후 금융권에는 '금융지주 네 곳 중 절반인 두 곳은 바꾸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금융당국 안팎에서 공공연히 나돌기도 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대통령실은 물론, 여당까지 은행의 이자장사를 강도 높게 비판하며 4대 금융지주 CEO가 전면 교체되는 것 아니냐는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했다.

    CEO 임기에 여유가 있는 건 하나금융 정도다.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은 올해 초 연임에 성공해 아직 임기에 여유를 두고 있다. 다만 함 회장 또한 '무풍지대'에 있지만은 않다. 대법원 판결을 앞둔 채용비리 재판 결과가 변수로 작용하고 있는 까닭이다. 1심에선 무죄를 받았지만 2심에서 유죄로 바뀌었고, 대법원에서 2심 결과가 확정되면 경영 연속성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평가다.

    최근에는 정치적 기류가 달라졌단 해석이 있다. 이번 정무위 국정감사 증인 명단에서 금융지주 회장 및 은행장들이 일괄 제외되면서 분위기가 급변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금융권을 압박하기보다는 '활용'하려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 아니냐는 분석이 뒤따른다.

    추석 전까지만 해도 일부 여당 의원실에서는 금융지주 회장 및 은행장들을 일괄 증인에 포함시키는 안을 주장했다. 특히 김건희 특검에서 들여다보고 있는 'IMS모빌리티' 투자와 연관돼 있는 신한금융의 경우 최고경영진급 증인 채택이 불가피할 거란 관측도 나왔지만, 실제 명단에서는 제외됐다.

    이처럼 주요 금융지주 및 은행 CEO들이 국감 증인 명단에서 일제히 제외된 것을 놓고 일각에서는 정부가 금융권에 '손 벌릴' 일이 많은 만큼 연임에 우호적인 기조로 돌아선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가계·부동산에 쏠린 자금을 기업과 모험자본으로 유도하는 '생산적 금융'을 핵심 금융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아울러 은행들은 서민금융대출 확대 및 1000억원 규모의 배드뱅크 지원 등 포용금융 청구서까지 받아든 상태다.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은 최근 새 정부와 가장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진 회장은 국민성장펀드 보고대회에 은행권 CEO 중 유일하게 초청돼 이재명 대통령이 지적한 '이자놀이'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냈고, 지난 달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과 함께 대통령 미국 유엔총회 순방에 동행했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 또한 지난달 29일 본사에서 '미래동반성장 프로젝트 CEO 합동 브리핑'을 열고 정부가 추진 중인 '생산적 금융'과 관련해 80조원의 지원 계획을 밝혔다. 특히 150조원 규모로 조성키로 한 국민성장펀드에 10조원 투자 계획을 금융지주 중 처음으로 밝히면서 포문을 열었다.

    '국감 리스크'를 피한 금융지주 CEO들은 국민성장펀드를 비롯한 생산적 금융 금액 및 로드맵을 제시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는 분석이다. 특히 민간 자금이 75조로 구성된 국민성장펀드에서 얼마의 금액을 제시할지도 관심이 쏠린다. 앞서 우리금융은 금융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가 조금 덜 된다는 이유로 10조원을 제시했는데, KB금융ㆍ신한금융ㆍ하나금융은 최소한 우리금융과 같거나 더 많은 금액을 제시해야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임기 만료를 앞둔 금융지주 회장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새 정부 기조에 부응하고 있다"라며 "다만 정권 교체 이후 첫 금융지주 인사인 만큼 정권 의중이 어디로 향할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