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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을 둘러싼 논란은 출발점만 놓고 보면 여느 대기업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늦은 초기 대응,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은 보상안. 그런데 쿠팡 사태는 빠르게 정치 문제로 변모했다. 국정조사, 범부처 태스크포스(TF), 규제 전선 확장, 동일인 지정 논의까지 이어지며 쿠팡은 어느새 단순한 기업이 아니라 정치권의 핵심 현안이 됐다.
'쿠팡'은 왜 이렇게 빠르게 또 크게 정치화했을까. 사고의 규모나 여론 악화만으로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이번 사태를 이해하려면 쿠팡이라는 기업이 어떤 기준점에서 움직여왔는지, 그리고 한국 정치가 플랫폼 기업에 무엇을 기대해왔는지를 함께 놓고 봐야 한다.
쿠팡의 기준점은 처음부터 한국이 아니었다
쿠팡은 스스로를 '한국 내수 플랫폼'이 아닌, 미국 상장 글로벌 기업의 한국 사업부로 인식해왔다. 의사결정의 우선순위 역시 한국 정치권이나 국내 여론보다는 미국 주식시장, 미국 기관 투자자, 그리고 미국 법률 체계에 맞춰져 있었다는 평가가 정치권 안팎에서 적지 않았다.
이 같은 인식은 쿠팡의 역린이던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 논의 과정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쿠팡은 온플법을 한국의 산업 규제가 아니라, 미국 상장사에 대한 제도적 불확실성 문제로 규정했다. 이 프레임은 미국 정부와 의회, 통상 채널을 통해 반복적으로 전달됐다. 그 결과 온플법 논의는 단순한 국내 입법을 넘어 외교·통상 이슈의 성격까지 띠게 됐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의 시선은 급격히 차가워졌다. 여당 내부에서는 "국내 입법을 미국 로비로 우회하려 한다"는 불만이 쌓였고, 실제로 일부 의원실에서는 쿠팡 대관과의 공식·비공식 접촉을 꺼리는 분위기까지 형성됐다. 이후 쿠팡이 인공지능(AI)부문 투자를 앞세워 정책적 접점을 넓히려 했지만, 정치권의 반응은 이전과 달리 냉담했다는 게 복수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美 법적 절차를 본 쿠팡, 메시지를 본 정치권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서도 쿠팡의 대응 기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국정조사는 정치적 압박 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절차로 인식됐고, 증인 출석 여부 역시 '법률적으로 필요한가'라는 기준에서 검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상장사로서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전략 자체는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문제는 이 접근법이 작금의 한국 정치 작동 방식과 거의 맞닿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정치권이 국정조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다. 국정조사는 법적 책임을 가르는 자리에 앞서, 기업의 태도와 책임 인식을 확인하는 정치적 장치에 가깝다. 증인 출석 여부 역시 법률 판단을 넘어 '이 사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가늠하는 상징으로 해석된다.
이 지점에서 양측의 기대는 어긋났다. 쿠팡은 법적 최소 요건을 충족하는 데 집중했지만, 정치권 내부에서는 "왜 이 기업은 정치의 언어로 설명하지 않느냐"는 불만이 누적됐다. 이 불일치는 시간이 갈수록 단순한 오해를 넘어 감정의 문제로 번졌다.
누적된 부담, 쿠팡에서 터졌다?…플랫폼 규제 강화하려는 與
쿠팡 논란이 정치권, 특히 여권에서 빠르게 확산된 배경에는 누적된 정책적 부담도 깔려 있다.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대형마트 규제, 노동 보호, 플랫폼 견제를 지지층 정체성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유통 환경이 급변하면서 이 기조는 점점 현실과 충돌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형마트 의무휴업제다. 전통시장 보호를 명분으로 도입됐지만, 결과적으로는 온라인 플랫폼에 유리하게 작용해왔다는 평가가 많았다. 제도의 한계는 오래전부터 지적됐지만, 정치적 정서 부담 탓에 본격적인 손질은 쉽지 않았다.
최근 일부 상임위를 중심으로 의무휴업제 폐지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도 이 때문이다. 물류창고 규제 예외, 플랫폼 경쟁 논리 일부 수용 등 그간 조심스럽게 유지해온 정책적 균형선이 흔들리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인식 변화라기보다, 정치가 쿠팡을 대하는 태도를 의식적으로 바꾼 결과에 가깝다. 그동안 온라인 플랫폼에 유리하게 작동해온 정책적 완충 장치를 더 이상 유지할 이유가 사라졌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보복이 맞다"는 말도 숨기지 않는다. 다만 불법에 대한 응징이라기보다, 정치적 신뢰 관계가 붕괴된 이후 나타난 정책적 보복이라는 점에서 이전과는 결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같은 맥락에서 현재 진행 중인 범부처 쿠팡TF나 집단소송제 강화 논의 역시 단기 대응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개인정보 보호, 금융 규율, 플랫폼 책임을 둘러싼 논의는 쿠팡이라는 특정 기업을 넘어, 미국 상장 플랫폼 기업을 한국 제도 안에서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되고 있다.
한 여당 의원실 관계자는 "국회가 이렇게까지 반응하는 건, (쿠팡이) 그동안 국내 정치권을 '미국 시장에 영향을 미칠 변수' 정도로 인식해왔다는 판단이 쌓였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최근 논의되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제 완화, 집단소송제 강화, 범부처 플랫폼 규율 TF 구상은 쿠팡을 응징하기 위한 조치라기보다, 쿠팡을 더 이상 기존의 정치적 완충지대 안에 두지 않겠다는 신호에 가깝다. 그동안 온라인 플랫폼에 유리하게 작동해온 제도적 보호막이 흔들리고 있다는 의미다.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쿠팡 사태 이후 내수 사업을 하는 미국 상장사를 어디까지 규제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내부에서 공공연해졌다"고 말했다.
쿠팡 이슈가 유독 정치 문제가 된 이유는 분명하다. 단일 사건이 아니라, 서로 다른 기준점을 가진 두 시스템이 처음으로 정면 충돌했기 때문이다. 지금 정치권이 보고 있는 것은 사고의 수습이 아니다. 글로벌 플랫폼 기업을 어디까지 '관리'하고, 어디부터 '규율'할 것인가를 다시 정하는 과정이다. 쿠팡은 그 시험대의 첫 사례가 됐다.
취재노트
개인정보 유출보다 '대응 방식'이 쟁점
美 상장 플랫폼과 韓 정치의 기준점 충돌
온플법에서 시작된 불신, 이번 사태로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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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6년 01월 08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