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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관투자가(LP)들의 투자 기준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한때 대형 사모펀드(PEF)와 조 단위 거래에 쏠렸던 자금과 관심이 최근 들어 중형 운용사, 미드캡 거래로 이동하는 분위기다. 표면적으로는 정부의 국내 주식 투자 확대와 중형 상장사 육성 기조와 맞물린 변화지만, 시장 안팎에서는 홈플러스·쿠팡 등 잇단 이슈가 LP들의 판단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최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국내 연기금과 공제회 등 주요 LP들은 PEF 출자 전략 전반을 재점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대형 하우스와 대형 딜에 대한 선호가 뚜렷하게 낮아진 반면, 중형 운용사와 기업가치 수천억원대 미드캡 거래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한 중견 LP 관계자는 "요즘은 PEF도 중형사 위주로 보고, 딜도 자연스럽게 미드캡으로 좁혀진다"며 "의도라기보다는 환경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는 정부 정책 방향과도 일정 부분 맞닿아 있다.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국내 주식 비중을 확대하라는 정책적 주문이 이어지면서, 대체투자 중에서도 기업금융과 대형 비상장 투자에 대한 내부 부담은 커졌다. 코스닥과 중형 상장사 육성을 강조하는 기조 역시 LP들로 하여금 '굳이 큰 비상장 딜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분위기다.
그런데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의 직접적인 계기는 최근 잇따른 사회적 이슈와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회생 논란 ▲쿠팡·SK텔레콤·KT 등의 대규모 정보 유출 사고 ▲런던베이글 산업재해 문제까지 겹치면서 LP들 사이에서는 "투자 이후의 사고가 곧 출자자의 책임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됐다. 과거에는 GP의 관리 문제로 여겨지던 사안들이 이제는 LP의 감독 책임, 더 나아가 사회적 책임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실제 일부 국내 LP들은 기업 투자 심사 기준에 '정보보안' 항목을 새롭게 추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보안은 기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 체계 안에서 사회(S) 항목으로 분류돼, 투자 이후 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할 경우 ESG 점수 감점으로 직결된다.
앞선 LP 관계자는 "새 기준 아래서는 기업의 정보 유출 사고가 터지면 단순한 운영 리스크가 아니라 ESG 이슈가 된다"며 "그 경우 출자자 입장에서도 설명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고 말했다.
사회적 논란을 출자 판단에 반영하려는 움직임도 분명해졌다. 홈플러스 사례처럼 고용, 거래처, 지역사회 등과 얽힌 문제가 불거질 경우 해당 GP와의 관계 자체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다른 LP 기업투자부 관계자는 "과거에는 수익률이 좋으면 웬만한 문제는 감내하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사회적 파장이 큰 투자일수록 내부에서 먼저 걸러진다"고 전했다.
이 같은 기류는 '규모 리스크'에 대한 인식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기업 규모가 클수록 고용, 소비자, 개인정보, 언론 노출 등 사회적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 파장 역시 확대된다. 대형 하우스와 대형 딜이 상대적으로 더 부담스러워지는 이유다. 반면 미드캡 거래는 사회적 관심이 제한적이고, 사후 관리 부담도 상대적으로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
출자 구조 변화 논의도 이런 인식과 맞물려 있다. 정책금융기관을 중심으로 한 일부 LP들 사이에서는 향후 PEF 출자 사업에서 대형과 중형 운용사에 동일한 금액을 배분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기존처럼 대형 하우스에 더 많은 자금을 몰아주기보다는, 중형 운용사와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구상이다.
투자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대형을 키우기보다 중형을 관리 가능한 범위에서 키우겠다는 시그널"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 때문에 사모펀드 업계에선 요즘 "다들 큰 딜을 못 한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자금이 없어서가 아니다. 사회적 파장이 커질 수 있는 투자에 대해 LP들이 먼저 선을 긋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최근 국내 투자시장에서 미드캡이 부상한 배경에는 성장 기대보다도, 사고를 피하려는 LP들의 현실적인 선택이 깔려 있다는 지적이다.
한 대형 사모펀드 관계자는 "이제 대형 딜은 수익률 이전에 '사고 가능성'부터 설명해야 하는 구조가 됐다"며 "그 부담을 감수할 수 있는 하우스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국내 LP, 대형 PEF·조 단위 딜에 선 긋기
정보유출·사회적 리스크, ESG 기준으로 편입
수익률보다 '사고 관리'가 출자 판단 기준
대형·중형 출자 격차 축소 논의도 본격화
정보유출·사회적 리스크, ESG 기준으로 편입
수익률보다 '사고 관리'가 출자 판단 기준
대형·중형 출자 격차 축소 논의도 본격화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6년 01월 12일 11:25 게재